현대제철, 현대오일뱅크, 롯데글로벌로지스(롯데택배) 등 연초부터 ESG 채권 발행 열기가 뜨겁다. 비금융사의 1월 ESG 채권 발행만 1조원을 웃돈다.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이제 막 ESG 채권시장이 싹트고 있다는 국내에서 이 같은 현상은 어떻게 봐야 할까.
국내 최초로 채권투자에도 ESG를 적용한 미래에셋 채권운용본부장 신재훈 상무는 “대외적으로 불확실성이 확대된 관점에서 기존의 채권 투자 접근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새로운 리스크 관리 잣대로 ESG를 바라봤다.
-최근 ESG 채권 발행이 늘고 있다. 시장 현황은 어떤가?
“2019년 하반기에 준비해, 지난해 4월 공모펀드를 출시했다. 10월 처음으로 공적연기금으로부터 아웃소싱 받아 ESG 채권형 사모펀드를 출시했다. 기업 자금조달원으로서 채권시장 규모가 상당히 커지고 있음을 보고, ESG 채권 잠재력을 일찌감치 평가한 후 준비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주택금융공사, 한국장학재단, 중소기업벤처진흥공단 등 공기업에서 발행한 ESG채권이 80% 정도로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공기업, 금융기관 외에 일반 기업들도 ESG채권 발행이 가파르게 늘었다. 원화 채권이 발행된 게 2018년인데, 짧은 기간에 규모가 커지고, 시장이 다변화되고 있다.”
-국내 최초로 ESG채권 상품을 론칭했는데, 국내 ESG 채권시장이 커지기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혹자들은 ESG 채권이라고 하면 ‘아직 시장이 협소하다’ ‘발행 기업 수가 많지 않다’면서 한계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ESG 채권에 대한 정의가 먼저 필요하다. 그린본드(녹색채권), 소셜본드(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 등만 ESG 채권이라고 보는 건 ‘협의의 개념’이다. ‘광의의 개념’은 ESG 통합(integration) 전략을 통해 기업 분석에 ESG를 적용해 투자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건 아니다. 또 협의의 개념으로 봐도, ESG 채권투자가 하루 아침에 되지 않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ESG채권 투자를 준비했는가.
“ESG 붐이 불기 전 2019년부터 준비했던 이유도 사회책임투자부터 지켜봤기 때문이다. 당시엔 흐름을 타지 못했던 이유를 찾아보니, 전통적 펀드와 차별화된 점을 찾기 어려웠다. 핵심은 벤치마크였다. 운용역은 벤치마크를 기준으로 자금을 굴리기 때문에, 가면 갈수록 수익성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사회책임투자 펀드가 전통적 펀드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기존 채권 투자와 동일하면 결국 비슷해지기 때문에, 직접 ESG 요소를 반영하기 위해 KIS채권평가와 손잡고 채권 지수(미래에셋-KIS ESG 채권 지수)를 개발했다.”
-포트폴리오에 신용등급 AA-이상,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 평가 등급 B+ 이상인 기업만을 담았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펀드를 준비하기 전 찾아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핌코(PIMCO,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등 글로벌 플레이어들의 ESG 철학 공통점은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둔다는 점이었다. 보이지 않는 비정형화된 정성적인 요인에 의해 하루아침에 기업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투자하는 기업의 신용등급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비재무 요소인 ESG를 가미했을 땐 결과치가 상당히 달랐다. 숫자로만 보면 생존가능성이 높은데, 비재무적 정보를 고려했을 땐 생존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평생 숙제는 안정적인, 지속가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다. 신용등급만으로 회사채에 투자하는 것이 이제 더는 안전하지 않다. 채권이 비교적 안전자산이긴 하지만, 모든 채권이 안전한 건 아니다. 디폴트 리스크를 항상 내포하고 있다.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게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 사건이다. ESG와 관련된 이벤트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해 기업 가치를 한 번에 훼손시켜 버린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이 사실이 확인됐다. 코로나에도 살아남은 기업의 대응능력이 ESG 스코어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ESG, 착한 투자로 포장돼 의심의 눈초리 받아와
-기업의 ESG 등급이 평가기관별로 다르게 나오는데, 이 등급을 포트폴리오에서 어떻게 반영하는가.
“운용사에서 모니터링하고 있다. 운용사에서 모든 기업들의 ESG등급을 평가하긴 힘들다. 각 평가기관별 등급에 차이나는 지점을 확인하고, 우리는 주기적으로 개별 기업의 ESG 이벤트를 모니터링한다. 예를 들어 전기차 배터리 기업에서 환경과 관련한 사건이 터졌을 경우 평가기관은 바로 등급을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운용사를 내부적으로 이에 대해 팔로우업한다.”
-민간기업들도 녹색채권 발행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될까.
“일반 기업의 발행 비중은 커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ESG 채권 발행에 대한 수요가 크고, 발행 조건도 좋다. 1베이시스포인트(bp, 1bp=0.01%p), 2bp라도 저금리에 발행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ESG투자에 부합하는 택소노미(녹색분류법)가 명확하게 구현되지는 않았다. 지난해부터 모든 대기업의 화두가 ESG 경영이기 때문에, 발행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자금 조달처로서 ESG 채권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선 고금리 채권과 안정성까지 잡을 수 있어 수요도, 공급도 확장세다. 최근 민간기업의 ESG 채권발행에 ‘매수경쟁이 벌어졌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까닭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ESG가 한낱 유행으로 끝날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길게 갈 것으로 보는가.
“결론은 유행이 아니라 메가 트렌드다. 피할 수 없는 파도라고 보여진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 버렸다. 작년 11월, 국민연금에서 투자자산의 50% 이상에 ESG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확산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는 금융기관이 될 것이다. 해외를 봐도 캘리포니아 공적연금, 노르웨이 국부펀드 등 공적연기금이 ESG 시장의 주요 투자자들이다. 정부에서도 탄소 중립과 그린 뉴딜 등 이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고 방향이다. 1년, 2년 단기 사이클이 있겠지만, 길게 놓고 봤을 땐 결국 시간의 문제이지 가야 할 방향이라는 건 명확하다. ESG 요소를 감안해서 기업 경영활동하는 것 자체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해진다는 의미도 있다.”
ESG 투자와 채권·주식 투자는 따로 분리될 수 없어
신재훈 상무는 ESG가 뜨거운 관심을 받으면서 점점 실무진 사이에서도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해외 큰 손 투자자들은 기업에 투자할 때 채권이든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든 꼭 ESG를 고려한다. 모든 연기금의 투자 자산을 보면 채권 비중이 제일 크다. ESG 투자와 채권·주식 투자를 분리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연말 연초에 바쁜 이유도 높아진 ESG 관심 때문이다. 작년에는 ‘착한 투자’로 포장돼서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많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CEO들이나 금융기관장들은 ESG 얘기를 하는데, 실무진 사이에서는 혼란이 있었다. 톱매니지먼트에선 관심이 많았지만 실무진 사이에서는 '형식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마케팅에 불과하다' 등의 불안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투자사 입장에선 결국 향후 50년, 100년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지금까지 적용됐던 신용등급에 비재무 요소인 ESG를 감안하지 않으면 앞으로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ESG 투자가 ‘착한 투자’는 아니라고 보는가.
“언론에서 ‘착한 투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착한 기업’이라는 표현 자체가 추상적인 한 부분만을 갖고 일반화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결국 수익이 나야 서바이벌 할 수 있는데, 착한 기업에 투자를 한다는 게 무슨 투자냐고 생각하는 실무진이 많았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기업의 대응능력을 보면 ESG 스코어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탄소 중립이든, 그린뉴딜이든, ESG 요소를 감안하지 않으면 앞으로 기업은 어마어마한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할 것이다. 기존의 전통적 재부분석으로 이걸 추정하기 어렵다. ESG 요소를 갖춘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현재의 재무제표상으로는 차별화되지 않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준비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은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이 때문에 착한 투자라기보다는 기업들 스스로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장기적인 포트폴리오 구축이라고 보여진다.”
-국내에 ESG 생태계가 완전히 자리 잡으려면,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
“유럽 등 주요국들의 ESG 시장 발전 과정을 보면, 이는 어느 한 주체의 노력이 아닌, 정책 당국과 유관 기관, 기업, 투자자, 운용사, 외부 평가 기관, 관리 감독 기관 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부는 녹색산업 분류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정립해야 하고, 공적인 연금기금과 보험사 등 장기투자 기관의 ESG로의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세금 및 비용 등)가 필요하다. ESG채권 인증과 그린워싱 방지를 위한 관리 감독을 수행할 수 있는 외부 기관들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투자기관에서는 ESG 투자가 왜 필요하고, 기업들 입장에서는 기업 경영에 왜 ESG 요소들을 감안한 의사결정의 필요성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톱다운 형태로 내려오는 움직임대로 하면서, 내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ESG에 대응만 하다 보면, 밀려오는 물결에 휩쓸릴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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