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라는 용어도 생소할 적 '메가트렌드'라고 예측한 보고서가 지난해 초반 등장했다. ESG를 그저 '알파', '도약'으로만 바라봤던 관점을 깨고 "해외를 중심으로 커진 메가 트렌드는 곧 한국에도 상륙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일찌감치 ESG의 대유행을 간파한 메리츠증권 강봉주 연구원을 만나 메가트렌드가 된 ESG를 해석해봤다.
-작년 ESG는 ‘메가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올해 ESG 시장 전망, 어떻게 보는가?
"실질적인 ESG가 확대되는 원년이라고 본다. 일단 국민연금이 ESG 요소를 반영한 벤치마크 인덱스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작년 하반기 한국거래소, 에프엔가이드, MSCI 등을 주축으로 지수사업자한테 용역을 줘서 국내 종목에 ESG 등급을 반영한 벤치마크 인덱스를 만들었다. 작년 상반기부터 착수해서 올해 초 어느 정도 마무리를 했다. 국내 주식의 큰 손이 나서다 보니 ESG 시장이 확대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또 작년 해외운용사들이 펀드 설계, 포트폴리오, 주주권 행사 등 투자 전반에서 ESG가 시스템에 내재화 됐다고 선언한지 1년이 넘었기 때문에 외인에 영향을 받는 국내 기업도 대응에 나서야 할 시기가 됐다고 본다. 코스피 전체 외국인 지분율이 30% 중후반, 주요 종목에는 외인 비율이 40~50%까지 차지한다. 해외운용사들로부터 계속 압박을 받게 되는 거다.
실제로 기업도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다. 연말 연초 삼성, SK, 네이버, 카카오 등에서 ESG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그냥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ESG 위원회를 설치한다든지, 계열사 평가에서 ESG 항목을 평가한다든지 비교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고 있다. 주요 기업의 경영 계획에 가시화된 ESG 전략이 포함됐다는 게 올해 관전 포인트다."
-확산의 원년이라 말씀하셨는데, 과연 ESG가 장기적인 변화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보는지?
"ESG 자체가 단기적으로 바꿀 수 없는 요소들로, 장기적인 계획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포스코의 경우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발표했다. 사업의 변화, 공정의 변화 등등 몇 달 만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ESG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는 1-2년 사이에, 그것도 재무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당장 영업이익으로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고 장기적으로 올라가는 무형의 가치이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장기 경쟁력과 연관돼 있기 때문에 향후 몇 십 년은 갈 것이다.
연기금이 투자에 ESG 요소를 고려하겠다고 말한 것도 장기투자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안정적으로 주가가 유지되는 게 좋은데, ESG 이슈가 한 번 터지면 예전에 비해 주가의 변동성이 매우 커졌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안정성을 위해 ESG 경쟁력을 높이라고 주문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매커니즘상 단순 반짝 이슈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ESG는 기본 세계관
근본 철학 바뀌지 않으면 사라질 위험이 도사린다
-기업 입장에서는 ESG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ESG는 이제 하나의 기본적인 세계관이다. 근본적인 철학이 바뀌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고,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기업의 근간에 영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연기금 같은 큰 손들이 주시하고 있지만, ESG 생태계가 커지면 개인 투자자도 ESG를 고려하게 될 것이다. ESG 리스크가 발생하면 단기적으로도 주가가 세게 출렁인다. 관심을 갖는 이해관계자는 넓어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생존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사이드 이슈로 치부하기엔 너무 극적인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환경(Environment)은 기업과 소비자와 투자자 등 각종 이해관계자가 살아가는 배경이다. 초연결사회로 들어오면서 어느 한쪽에서 규칙을 어겨버리면 모두가 영향을 받는 시대가 된 거다. 이제 규칙을 정해서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올라오면서 규칙을 어긴 기업에겐 경고가 들어올 것이다.
사회영역도 마찬가지다. 마켓컬리가 아무리 수익성이 좋다고 해도,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샛별배송 노동자가 사고가 났다면 기업 평판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최근 페이스북은 개인 데이터를 함부로 사용해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실제로 ESG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주가에 바로 영향을 미쳤다."
- ESG가 세계관이 됐을 때, 무엇이 바뀌나?
"투자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재무적인 성과만 잘 내는 것으로만 투자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시점이다. 특히 환경의 경우 전 지구적인 이슈로 국가 차원에선 해결이 안 된다는 초국가적인 협의가 있었다. 이런 부분이 자본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사회의 경우도 종업원을 길러 성과를 내는 회사, 자기가 속한 사회와 소통이 잘되는 회사가 기업 가치도 높고 수익도 잘 낸다는 경험을 확인받은 것이다. 주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주 친화적인 정책을 쓰는 회사가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 이런 개념이 ESG라는 용어로 정립된 거다. 이제 ESG는 선택의 단계를 지났다.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PER, ROE 같은 숫자보다 무형자산이 주는 영향이 더 크다는 것도 ESG 확산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당장 재무제표에는 찍히지 않는 무형자산이, 사람들이 가치를 교환하는데 작용하고 있다는 걸 매일 확인하고 있다. 테슬라의 PER이 150배인 현상도, 이익을 내지 않는 비트코인이 뛰는 것도 무형자산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ESG 등급은 투자의 기본서
투자의 철학 가져야 기본서가 빛을 발한다
-ESG 평가 등급을 ESG 투자의 기본으로 보고 있는데, 평가기관마다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비재무정보를 다루고 질적인 데이터를 다루기 때문에 평가의 주관성, 평가의 우선순위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데이터 이용자의 세밀한 실사가 필요하다. 가중치를 두는 요소가 다르기 때문에 투자자의 가치판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나의 해소방법으로는 등급을 만들 때 각자 중점을 두는 요소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 기존 등급 발표는 ESG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잡혀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논쟁이 많기 때문에 정보 제공자와 정보 이용자 사이에서 등급 결정 기준에 대해 충분히 토의하고 합의 해갈 수밖에 없다."
-국내 기업은 ESG 등급 결과에 사활을 거는 측면이 있다.
"등급에서 오는 심리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평가 당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가능한 평가를 좋게 받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싶어 평가 기준에 따라 ESG 활동을 짜기도 한다. 어떤 기업은 CEO의 메시지에서 AI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에만 목을 매선 한계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그린워싱(Greenwashing, 위장 환경주의)을 조심해야 한다.
채권 같은 경우도 그렇다. 사회적 채권을 많이 발행한 한국장학재단이나 주택금융공사나 원래 하던 활동들을 과하게 홍보한 경향도 있다. ESG 채권 같은 경우엔 사후보고라는 검증 수단이 있다. 결국 건강한 모니터링 체계를 통해 워싱하는 기업을 가려내는 게 가장 핵심이 될 거다."
-ESG 생태계를 일구는 키 플레이어는 누가 될까?
"핵심 주체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연기금이라고 본다. 연기금은 투자를 하지만 공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자금력과 목적의식을 가지고 생태계를 확장시킬 수 있다. 또한 의결권을 사용해 직접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주체이기도 하다. 거래소 같은 감독기관도 중요하다. ESG 정보 공시 같은 제도를 의무화하는 일종의 규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등급을 매기는 평가기관도 생태계 확장에 중요하다. 운용사가 직접 ESG 등급을 산출하고 평가하는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다. 물론 공정성 등의 문제가 있을 순 있지만 세부적인 건 평가사들의 노하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간접적으로는 회사의 평판을 결정할 수 있는 대중도 있다. 주가나 회사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만, 일종의 브랜드 평판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 저변에 깔려있는 플레이어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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