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환경청(UBA)은 6일(현지시각) 석유기업들이 중국의 기후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한 탄소크레딧 21만5000톤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바이오연료 생산기업들이 1년 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그린워싱 문제를 지적했는데,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 결과다.
문제가 된 프로젝트들은 바이오 연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업스트림 배출 감축(UER) 프로젝트라고 로이터 통신은 6일(현지시각) 전했다. 석유기업은 식물 기반의 바이오 연료를 사용하거나 UER 방식의 프로젝트를 통해 탄소크레딧을 생산한다. UER 프로젝트는 가스 플레어의 중단처럼 석유 생산 과정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이니셔티브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탄소 크레딧을 확보하는 사업이다.
독일 바이오 연료 산업 협회의 전무 이사 엘마르 바우만은 지난 5월 “순진하고 부적절한 감사로 인해 친환경 제품 인증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며 “처음부터 그린워싱에 취약할 것이 분명한 프로젝트를 제대로 조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고 독일의 공영방송인 ZDF를 통해 전한 바 있다.
탄소크레딧 22만톤 승인 취소…검증기업 임직원 검찰 조사 돌입
UBA는 석유 기업들이 탄소 크레딧을 확보하기 위해 자금을 조달한 중국의 8개 기후 프로젝트에서 문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바이오 연료 생산업체들은 해당 프로젝트로 인해 사업에서 부당하게 손해를 보게 됐다는 입장이다.
UBA는 프로젝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승인한 8건 중 7건을 철회했다. 환경청은 13개의 프로젝트를 추가로 검토하고 있다. 해당 크레딧은 2018년부터 사용이 가능했는데,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다. 검토 중인 21개 프로젝트 중 5개 프로젝트만 현장실사 단계까지 승인받았다. 독일 베를린 검찰청은 상업적 사기 혐의로 프로젝트와 탄소 배출권을 검증한 회사의 전무이사와 직원 17명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UBA가 문제를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기까지 1년이 걸렸다. ZDF는 "UBA가 2023년 8월 말에 문제를 인식했지만,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 사건은 독일공영방송 ZDF의 조사와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ZDF는 3억5000만유로(약 5194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최소 10개의 UER 프로젝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프로젝트가 실재했다면, 약 150만 톤의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었을 것으로 조사됐다.
셸, 로즈네프트, OMV와 같은 기업들이 ‘가짜 크레딧’ 스캔들에 연루됐다. ZDF는 해당 기업들이 수행한 UER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수행됐다고 전했다. ZDF는 위성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신규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자리에 실제 탄소 배출량 감축 시설이 들어서지 않았거나, 이미 오래전부터 운영되던 시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로 인해 발생한 비용이 소비자들의 연료 가격으로 전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기업의 45%, “그린워싱 몰라”...해외발 규제 리스크에 비상등
독일의 사례는 그린워싱이 탄소 크레딧이 대거 취소되어 기업에 재정적 위험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보여준 이슈다. 국내 기업들은 그린워싱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아, 이런 해외발 규제 리스크에 취약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9일 최근 국내기업 100곳을 대상으로 ‘그린워싱에 대한 기업 의견’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은 인식부터 그린워싱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응답이 45% 나왔다.
기업들의 그린워싱 대응체계도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린워싱 대응을 위한 전담부서‧인력을 두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61%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내부시스템이나 절차도 48%가 구축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내부시스템과 절차가 구축되지 못한 이유로는 ▲전담부서 부재(31.3%) ▲경영진의 인식 부족(25%) ▲내부 전문인력 부족(22.9%) ▲비용 및 자원제한(20.8%)가 꼽혔다.
향후에도 별도 대응 계획이 없다는 응답이 41%였고 임직원 대상으로 그린워싱에 대한 교육을 하겠다는 응답이 33%, 그린워싱 진단•평가•컨설팅 시행이 31%로 집계됐다. 그린워싱 전담 조직이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응답은 16%로 확인됐다.
기업들은 현 상황에 대한 대책으로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구체적 사례를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그린워싱 대응 관련한 애로사항으로 상세 가이드라인과 지침 부족(59%)을 문제로 지적한 것이다.
중복 규제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내 그린워싱에 관한 규정으로는 환경부의 환경성 표시‧광고 관리제도에 관한 고시(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와 공정거래위원회의‘환경 관련 표시‧광고에 관한 심사지침(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있다. 응답 기업들은 두 규정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적정하다’는 의견이 90.0%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조영준 대한상의 지속가능경영원장은 “국내외에서 강화되고 있는 그린워싱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및 산업 전반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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