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금융상품의 ESG 정보를 공개하는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정(SFDR, Sustainable Financial Disclosure Regulation) 시행을 또다시 연기했다. 당초 계획은 2022년 1월로 예정됐지만, 2023년 1월로 시행을 미루면서 1년가량 늦어진 셈이다.
EC는 지난 11월 25일 유럽연합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기업, 금융종사자와 감독당국의 원활한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 규제기술표준(RTS) 적용을 보류했다”며 시행을 1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연기는 규제기술표준(RTS)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졌다. 어떠한 상품이 환경·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식별하는 방법론인 RTS는 SFDR 시행에 필수적이다. RTS는 지속가능한 금융상품으로 인정받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자본이 그린워싱을 일으킬 수 있는 기업으로 흘러갈 경우 미치는 악영향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 공개 항목을 포함한다. 가령 기후 및 환경, 사회 및 직원 문제, 인권 존중, 반부패 항목 등이다.
RTS가 제정돼야 ESG 목적에 부합하는 상품을 선별하는 제8조, 제9조 규정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지난 7월, SFDR 초안이 발표되고 제8조, 제9조가 규정한 범주가 그린워싱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에 지난 10월 유럽증권감독당국(ESMA)는 상품공시에 대한 새로운 의무를 내놨다. 18개의 필수 악영향 보고서(PAIS)를 공개하고, 제품이 환경적 영향으로 입을 수 있는 가치 손상을 함께 보고하라는 것이다. ESMA의 새 권고안과 가이드라인의 일종인 RTS를 어우르기 위해 시행 연기를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미완성된 택소노미(Taxonomy, 친환경분류체계)도 SFDR의 시행을 미루는 환경적 요인 중 하나다. SFDR은 EU의 지속가능금융 액션플랜 중 하나다. 액션플랜의 토대인 택소노미가 완성돼야 금융사에게도 지속가능한 금융상품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 일정대로라면 내년 7월 1일 시행됐어야 하지만, 택소노미와의 연계성이 큰 탓에 시행 일정이 한번 더 미뤄졌다. 아직 EU 내부에서도 원자력을 둘러싼 택소노미에 대한 합의가 완성되지 않은 탓에 SFDR까지 미뤄지고 있는 것이다.
SFDR의 직접 규제를 받는 금융사들은 이를 둘러싸고 한숨 돌리는 모양새다. 로펌 롭스앤그레이 이브 엘리스 파트너 변호사는 “규정이 지연되면서 금융사들은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겼다”면서도 “아직 최종 규칙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엘리스 변호사는 “지연으로 야기된 혼란은 어떤 금융상품이 지속가능한지, 어떤 정보를 공시해야 할지 판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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