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를 아시나요?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ance)의 줄임말입니다. 기업 비재무정보의 핵심요소 세 가지입니다. 근래 전 세계적인 경영 트렌드를 ESG로 꼽을 정도로, 자주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게 아직 ESG는 생소합니다. 용어도 많고 기준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IMPACT ON은 '줌인 ESG’ 코너를 통해 ESG를 둘러싼 다양한 프레임워크와 기준들을  알기 쉽게 소개해드립니다.

/편집자 주

산을 깎아 태양광 발전 사업을 진행한다면, 녹색 산업으로 부를 수 있을까. 

원전은 친환경 산업으로 분류가 가능할까. 

택소노미(Taxonomy). ‘분류하다’라는 ‘tassein’과 ‘법, 과학’이라는 ‘nomos’의 합성어로 무언가를 분류한다는 의미다. 위와 같은 애매모호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선 분류의 기준이 필요하며, 정의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환경부가 최근 ‘K-택소노미’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서다. 그린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어떤 경제활동이 그린에 해당하는지·해당하지 않는지를 가려보겠다는 것이다. 

 

민간투자 활성화 위한 택소노미 필수

산업 넘어 경제 전반까지 고려해야

한-EU 컨퍼런스 당시 한국이 그린뉴딜을 성공할 수 있도록 녹색금융에 대해 조언해달라는 질문에 유럽 BNP 파리바는 이렇게 답했다. 

 

“민간투자가 성공의 핵심입니다. 정권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확하고 강한 정책 리더십을 만드십시오.”

 

그린뉴딜의 핵심은 산업의 전환이다. 산업을 전환하기 위해선 사업이 활성화돼야 하고, 자금이 돌아야 하고, 투자가 활발해져야 한다. 하지만 기준이 없으면 시장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발행사는 그린워싱이라는 의혹을, 검증기관은 주먹구구식 검증이라는 비판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택소노미는 민간 금융의 흐름이 환경목표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일종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셈이다.

대표적인 택소노미 기준에는 유럽연합(EU)과 ISO(International Standardization Oragnization), 녹색채권원칙(GBP), 기후채권이니셔티브(CBI) 등이 있다.  

그러나 택소노미가 단지 그린본드 판단의 기준으로만 그쳐선 안 된다. 그린워싱을 방지하기 위한 소극적인 역할을 넘어, 저탄소 산업의 성장을 지원해주고, 고탄소 산업의 탈탄소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택소노미를 지향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의 택소노미는 적극적 택소노미를 지향한다. 먼저 지속가능금융이라는 대과제를 상정하고, 그로 향하는 로드맵의 첫 번째 관문으로 택소노미를 정립했다. 기준을 정하는데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EU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의 10개 항목과 EU 분류체계 관련 세부 추진 계획/한국기업지배구조원 리포트 10권 6호
EU 지속가능금융 행동계획의 10개 항목과 EU 분류체계 관련 세부 추진 계획/한국기업지배구조원 리포트 10권 6호

 

산업 분류체계가 아닌 경제활동 분류체계를 목표로 잡은 게 기준의 질적인 차이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녹색 프로젝트인지, 녹색 산업에 해당하는지 포지티브 스크리닝으로 구별하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경제활동으로 범위를 넓혀 네거티브 스크리닝의 조건을 제시했다. 

 

경제활동으로 범위 넓힌 

네거티브 스크리닝 기준 마련 고려해야 

EU가 제시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의 조건은 아래와 같다. 

 

① 6가지 환경적 목적 중 하나 이상에 기여하는지

기후변화 완화 기후변화 적응 수자원과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 및 보호

순환경제로의 전환 오염 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과 생태계 보호 및 복원

② 다른 환경적 목적에 심각한 위해를 미치지 않는지(DNSH, Do No Significant Harm)

③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를 준수하는지(OECD 지침, UN SDGs 등)

④ 기술선별기준(Technical screening criteria, TSC)에 부합하는지 

이렇게 만들어진 택소노미는 아래의 단계를 통해 적용된다. 경제활동에 분류체계를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 일반 기업은 물론 직접적인 환경 활동을 하지 않는 비금융사들도 적격성을 따질 수 있다.  

 

1단계

평가의 대상이 되는 기업의 경제활동(또는 금융상품에 포함되는 활동)을 분야별로 구분하고, 이를 분류체계에 부합하는 매출 비중, 자본적 지출(CAPEX), 또는 운영 지출(OPEX) 단위로 나타낸다. 

2단계

개별활동에 해당하는 기술선별 기준을 확인한다. 

유럽표준산업분류(NACE)를 기반으로 6가지 환경목표 중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과 관련된 70개, 68개의 활동을 구분했다.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에 기여하는 경제활동/한국기업지배구조원 리포트 10권 6호
기후변화 완화 및 적응에 기여하는 경제활동/한국기업지배구조원 리포트 10권 6호

 

3단계

DNSH(Do No Significant Harm) 기준을 확인함으로써 해당활동이 상당 수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다른 환경목표에도 해를 주지 않음을 확인한다. 

4단계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장치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5단계

분류체계에 부합하는 경제활동에 대한 수치를 도출한다. 

기업은 경제활동에 EU 분류체계를 적용해 전체 매출 중 분류체계에 부합하는 매출의 비중을 계산하고, 금융사는 포트폴리오에 EU 분류체계를 적용해 전체 투자 포트폴리오 중 분류체계에 부합하는 투자의 비중을 계산한다. 


유럽연합은 택소노미를 위임 입법의 형태로 수립하면서, 기업과 금융시장 참가자에 대한 일종의 정보공개 관련 규제로까지 작용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스스로 환경사회 리스크까지 관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넷제로 목표와 저탄소 순환경제로 전환을 위한 그린딜(Green Deal)까지 발표하며 택소노미를 단순히 녹색금융의 영역에서만 적용하는 게 아닌, 경제체제 전환으로 폭넓게 적용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 이후 녹색 지우기 경험한 기억들

택소노미 마련에 앞서 필요한 건 ‘안정성’

국내는 어떻게 택소노미를 적용할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실 주최로 열린 ‘성공적인 그린뉴딜 이행 및 기후변화 목표 달성을 위한 금융지원 정책 토론회’에선 중장기적 비전이 제시되기도 했다. 

임대웅 UNEP FI(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 한국 대표는 “단기적으로는 그린본드(녹색채권)의 발행, 연례보고 등의 기준으로 활용하고, 중기적으로는 정부의 환경 인프라 투자 기준으로, 금융사의 녹색산업 투자 기준으로 활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국내 사정에 맞춘 택소노미로 유럽연합(EU)의 탄소 국경세 등 무역관세의 기준 및 협상 논리로 활용해야 한다”며 로드맵을 제시했다.  

사실 국내 택소노미 마련에 대한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 일환으로 택소노미가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가 표준 택소노미를 마련한 것이 아닌, 금융기관별 독자적 택소노미 마련으로 혼선만 가져왔던 선례가 있다. 기관별 상이한 기준으로 인해 그린워싱(Green washingㆍ친환경 사업이 아닌데도 친환경으로 포장)이 발생했으며, 녹색금융 실적에 대한 불신 등으로 금융기관의 정책 참여는 저조했다. 당시 재생 에너지 시장마저 침체되며 금융권 및 산업의 ‘녹색’에 대한 기억은 좋지 않다. 이전의 경험으로 쌓인 피로감을 깨고 민간의 참여를 독려하는 일도 정부의 또 다른 과제다. 

더불어 당시 도입된 녹색인증제도, 환경산업특수분류체계, 녹색산업 분류체계 등을 어떻게 택소노미에 적용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 녹색인증제도의 경우 지나치게 복잡하고 어려운 인증절차와 매력없는 인증 혜택 때문에 실패한 이니셔티브로 평가받는다. 

가장 중요한 건 정책의 안정성이다. 녹색성장위원회 유인식 위원은 “그린뉴딜 성공을 위해 정부는 정권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명확하고 강한 정책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영구적인 금융시스템 변화라는 정책 시그널을 민간에게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인식 또한 택소노미 마련 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아직 국내 기업들은 기후위기 인식이 미미하다. 기후위기가 기업들의 생존이슈라는 시급성을 주는 것도 관의 몫으로 남아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자사의 사업이 친환경으로 분류돼 그린본드를 조달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떤 실익이 있는지 설명하고 기업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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