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5월 초 발표한 LNG 발전소 건설을 두고 RE100 캠페인을 만든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이 “RE100 가입 당시 울산 LNG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알지 못했다”며 “상황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더클라이밋그룹은 현대차에 긴급 해명을 요구한 상태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캠페인으로, 더클라이밋 그룹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연합으로 시작됐다. 만약 규정 위반으로 결정되면 가입이 철회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RE100 가입 승인을 받았다.
현대차는 ‘울산공장 열병합발전소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해 5월 3일 울산 북구 주민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현대차가 비상용 발전시설이 아니라 대규모 자가 발전소를 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친환경 전력을 대거 자체 조달하는 것은 글로벌 완성차업계에서도 이례적이다.
현대차가 건설하는 LNG 발전소의 발전용량은 184㎿(비상용 21.6㎿ 포함)다. 현대차는 LNG 발전소로 울산공장이 기존 한국전력에서 공급받는 연간 전력량(129만㎿h)의 72%를 대체한다는 계획이다. 발전과 난방을 동시에 제공하는 열병합 시스템으로 시간당 100t 규모의 스팀까지 생산한다. 울산공장은 연간 약 140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으며, 울산공장은 전체 생산량의 4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마친 뒤 울산공장 내 1만7000여㎡ 부지에 57MW급 LNG 가스 터빈 2기와 48.4MW급 증기 터빈 1기 등을 건설한다. 투자금액은 조(兆) 단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2025년 준공해 발전소를 본격 가동할 방침이다. 연료인 LNG는 한국가스공사나 SK가스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석탄 발전이 많은 국내에서 LNG는 연소 시 탄소집약도가 낮기 때문에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2030년 기후감축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인식된다. K-택소노미에서도 LNG는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활동으로 인정돼 2030년부터 2035년까지 한시적으로 포함됐다.
현대차그룹의 LNG 발전소 건설 발표는 4월 25일 RE100에 가입 승인을 받은 지 2주 만에 나왔다. 현대차그룹은 ‘2045년 RE100 달성’을 공언한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LNG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인 것은 맞지만, ‘2045년 RE100 달성’이라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또 “공장 내에서 LNG를 통해 열과 전기를 생산하면 에너지 효율이 20% 이상 향상되고, 그만큼 실질적인 탄소감축도 가능하다”며 “이는 재생에너지 전환 단계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이러한 투자가 화석 에너지 확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LNG사용량을 낮춰 궁극적으로는 그린 수소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 김동욱 정책조정팀 부사장은 지난 주 대구에서 열린 2022 세계가스회의 백브리핑에서 “현대차는 LNG가 석탄보다 오염이 적기 때문에 LNG를 고려했으며 수소와 천연가스를 공동 연소함으로써 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할 생각”이라며 “현대차가 석탄에 많이 의존하는 국가 배전망에 계속 의존할 것인지 아니면 가장 깨끗한 형태의 화석연료로 전기를 공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다”고도 말했다.
환경단체 "LNG 발전소는 좌초자산일 뿐"
반면 환경단체는 LNG 발전소 건설 계획을 두고 “RE100에 가입해놓고 LNG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그린워싱”이라며 LNG 발전소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청소년기후행동, 호주기반 캠페인 단체 액션 스픽스 라우더는 30일 “현대차는 LNG 발전소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현대차는 한국에 단기적으로 재생에너지 도입이 어렵고, LNG 발전소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 단체는 "만약 이러한 가스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현대차는 국가 배전망에서 직접 전기를 조달할 때보다 25년 동안 자체 가스 발전소에서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당장은 신규 LNG 발전소가 더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체 발전소를 통한 전력 조달은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떨어질 뿐 아니라 어느 시점부터는 기존 전력망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LNG 발전소가 좌초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 분석 비영리단체인 트랜지션 제로(Transition Zero)는 이달 초 발간한 ‘연료 전환 2.0’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가격 변동성 증가와 재생 에너지 비용 하락으로 천연 가스는 에너지 전환에서 중요한 전환단계 연료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천연가스 이용의 ‘전 생애주기’를 고려할 땐 온실가스 배출량은 상당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가스의 주 성분은 메탄으로 채굴 과정에서 대기 중으로 대량 배출되는데, 메탄이 야기하는 지구 온난화 효과는 이산화탄소의 약 80배에 이른다”며 “전세계적으로 메탄을 시급히 줄여야 한다는 ‘글로벌 메탄 서약’이 합의된 상황에서, LNG 발전소는 이러한 노력에도 반하는 행보”라고 했다.
현대차가 장기적으로 LNG 발전소를 그린 수소 발전소로 전환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는 “기술적 한계, 그린 수소 조달 등 현실적 문제를 고려하면 화석연료 설비 투자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한 말”이라며 “LNG 발전소 완공 시점에는 배터리 저장용량까지 갖춘 태양광 시설이 더 저렴한 투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비판했다.
더클라이밋그룹 "현대차에 긴급 해명 요청"
한편, 더클라이밋그룹은 국내 한 언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대차그룹이 RE100에 가입할 당시 LNG 발전소 건설 계획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현대차는 LNG발전소를 2025년에 완공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2045년까지 RE100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현대(차)는 204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겠다고 약속했고, 2040년까지 LNG 시설을 그린 수소 발전소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우리와 공유했다”라면서도 “우리는 현대(차)의 LNG공장이 어떻게 RE100 기준, RE100 회원사로서의 의무와 부합하는지에 대해 긴급한 해명을 요청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클라이밋그룹은 “화석연료 시설의 사용은 RE100의 정신이나 약속에 위배된다”며 “가스는 화석연료로 간주되고, 우리가 ‘녹색 해결책’으로 보는 연료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