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경제로 전환되면, 어떤 녹색 일자리(Green Job)가 생겨날까. 그린잡은 ‘저탄소 목표와 일치하거나 목표를 지원하는 일자리’로 정의할 수 있다. 일이 바뀌면서 근로자들은 저배출 기술과 더 지속가능한 관행에 적응해야 한다. MZ로 불리는 청년세대는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직장에 취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이에 기후변화센터와 임팩트온은 ‘탄소중립으로 그린(Green) 미래’라는 주제로 그린잡을 제공하는 국내 기업을 찾아 인터뷰했다.

탄소중립이 국내외로 강조되고 산업에 탈탄소화가 요구되면서, 건축 산업도 이에 대응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을 고려하는 제로에너지건축(Zero Energy Building, ZEB)과 그 외 환경 영향도 함께 고려하는 녹색 건축물이 등장하고 있다. (주)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건축)는 지속가능성이란 ‘좋은 건축’의 한 특징으로, 기존의 건축 설계와 따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림건축은 올해 창립 55주년을 맞아 ESG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선포했다. 정림건축은 NID 본부와 이노베이션 본부를 세워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건축 설계를 실행한다. LG씽큐홈은 정림건축이 만든 제로에너지 건축물의 한 사례다. LG씽큐홈은 제로에너지건축 인증제에서 1등급을 최초로 획득했다. LG씽큐홈은 998장의 태양광 패널을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건물일체형태양광발전(BIPV) 시스템을 통해 에너지를 조달한다.

정림건축은 녹색건축대전과 생태환경건축대전이라는 국내 최대 친환경 건축상을 꾸준히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LG씽큐홈, 올해는 크리스탈스퀘어와 스탈릿 성수라는 두 개의 건축물로 각각 수상했다. <임팩트온>은 정림건축의 기현철 NID 본부장과 안성우 이노베이션 본부장을 만나 ‘지속가능한 건축’과 그린잡에 관해 물었다. (이하 기 본부장, 안 본부장)

기후변화센터와 임팩트온은 정림건축 사무실에 방문해 기현철 NID 본부장(오른쪽)과 안성우 이노베이션 본부장(왼쪽)에게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해 질문했다. 지속가능한 건축은 '좋은 건축'의 한 특징이며, '패시브 디자인'이라는 기본 설계에 충실할 때 실현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임팩트온
기후변화센터와 임팩트온은 정림건축 사무실에 방문해 기현철 NID 본부장(오른쪽)과 안성우 이노베이션 본부장(왼쪽)에게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해 질문했다. 지속가능한 건축은 '좋은 건축'의 한 특징이며, '패시브 디자인'이라는 기본 설계에 충실할 때 실현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임팩트온

Q. 정림건축은 어떤 회사인가.

<기 본부장> 인천국제공항,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분당서울대병원, 하남 스타필드, 영등포 타임스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번쯤 방문해 보았을 것 같다. 모두 정림건축이 설계한 건축물이다. 정림건축은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는 도시 기반 시설을 설계해온 회사라고 말할 수 있다.

<안 본부장> 정림건축은 1967년에 설립된 이후로 국내 건축 설계 업계를 선도해가는 기업이다. 업계의 생태계 조성과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성과물을 외부에 공유해왔다. 한 사례가 캐드 시스템이다. 정림건축은 캐드 시스템을 국내 업계 최초로 도입해, 설계 도면을 손으로 그리던 기존 시스템에서 컴퓨터를 활용해 설계하는 디지털 전환을 이뤘다. 도입 노하우를 공유해 지금은 캐드를 이용하지 않는 설계를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친환경 부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녹색건축대전과 생태환경건축대전이라는 상이 있는데, 정림건축은 업계에서 이 상을 가장 많이 받았다. 국내 친환경 건축을 선도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기업이다.

Q. 건축에서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기 본부장> 친환경 혹은 지속가능한 건축은 ‘좋은 건축’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애착을 느끼는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고 고장 난 곳은 고치며 오랜 기간 사용한다. 좋은 건축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용할 수 있고, 이용하고 싶은 건물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속가능성은 좋은 건축을 할 때 보장된다.

<안 본부장> 건축이라는 행위는 자연을 파괴한다. 그린잡은 환경과 생태계를 보호하는 방향인데 이와는 반대된다고 생각한다. 정림건축은 건축 행위 중 설계를 담당한다. 환경 파괴와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며 환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건축물을 설계하려고 노력한다. 이런 설계에서 나온 건축물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한다.

Q. 정림건축이 실행한 지속가능한 건축 설계 사례를 소개해달라.

<기 본부장> 제로에너지빌딩인 LG싱큐홈을 사례로 들 수 있다. 친환경 빌딩이라고 하면 태양광 패널을 생각한다. 정부를 포함한 다양한 단체가 건물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지원금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미관상 좋지 않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제품이 아름답지 않다고 무한한 태양에너지를 포기하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했다. 이 패널로 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기 위해 BIPV(건물일체형태양광발전시스템)를 활용했다. 태양광 패널을 건물의 외장재로 사용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정림건축 친환경팀은 가장 효율적으로 태양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개발했다. LG전자의 기술과 정림건축의 상상력이 시너지를 내서 국내 최초의 BIPV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Q. 제로에너지빌딩, 친환경 빌딩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어떤 요건을 갖춰야 이런 건축물이라고 볼 수 있나.

<기 본부장> 해당 건축물은 등급이나 인증을 획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요건을 갖춰야 한다. 패시브 건축이다. 이는 건물의 단열 성능이 어느 정도인가 등 기본에 얼마나 충실한지를 중시하는 건축이다. 패시브 건축이 잘돼야 건물을 오래 사용하는 장수명 건축이 가능하다. 건물의 형태와 공간이 유연성이 있어야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건축이 된다고 생각한다.

<안 본부장> 패시브 건축은 단열 성능을 늘리거나 하는 방식으로 열원을 사용하지 않고 에너지를 절감하는 역할을 일차적으로 수행한다. 그 다음이 액티브 건축이다. 액티브 건축은 보일러, 에어컨과 같은 기계 장치를 효율이 높은 시스템으로 설치해 건물의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패시브 건축이 먼저 계획되고 액티브 시스템이 얹어진다. 이 결과물에 태양광 패널 등 신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장치를 추가해 만든 건축물이 친환경 빌딩이라고 생각한다.

Q. NID와 이노베이션 본부가 정림건축에서 지속가능한 건축 설계를 맡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나.

<기 본부장> 정림건축은 900여 명의 건축가가 수백 개의 건축 설계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프로젝트는 건축 설계자 개인의 기호나 철학을 일부 반영하지만, 정림건축의 정체성과 설계의 방향성 안에서 진행된다. 이 디자인과 기술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NID(Next Integration Design) 본부가 수행한다.

<안 본부장> NID 본부가 실무 설계팀에서 당장 필요한 디자인과 기술에 대한 지식 및 데이터를 제공하고 기획, 운영, 관리하는 부서라면, 이노베이션 본부는 당장의 현실보다 미래를 연구하는 부서다. 이노베이션 본부는 기술에 집중하며, 이노베이션 본부에는 친환경팀이 포함된 연구소가 소속돼 있다.

Q. NID와 이노베이션 본부에 신입사원이 지원한다면 어떤 역량이 필요한가.

<기 본부장> NID 본부에도 여러 부서가 있다. 품질 관리 부서는 모든 설계 도면과 서류의 기술을 평가하다 보니 많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하다. 이 부서에는 경력자가 포진해 있다. 저연차나 신입사원이 접근하기에는 어렵다. 다만, 건축 설계는 다양한 팀이 조직화해 함께 일하기 때문에 일을 하다보면 자신의 관심과 능력에 맞는 부서를 찾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안 본부장> 이노베이션 본부의 친환경팀은 에너지 시뮬레이션이나 코딩을 통해 필요한 시뮬레이션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도구를 다룰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건축 디자인에 필요한 BIM tool인 레빗이나 라이노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직원들이 일한다. 대학에서 해당 도구들을 활용하는 기술을 익혀 놓으면 입사에 유리하다고 말씀드린다.

Q. 지속가능한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안 본부장> 건축 설계사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면, 건축 행위에서 발생하는 파괴를 최소화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LEED AP이라는 미국의 친환경협회(USGBC)에서 발행하는 자격증이 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친환경 및 지속가능한 설계에 대해 알기 시작했고, 이를 반영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기 본부장> 가장 우수한 설계는 기존에 있는 걸 잘 활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건물은 결국 환경을 파괴하고 탄소를 배출한다. 유행이나 용도에 따라 건물이 폐기되지 않고 오랫동안 사용되는 장수명 건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건물의 수명을 늘리는 데는 리모델링이 중요하다.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정림건축에서 일하는 지금까지 커리어를 보면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많다.

Q. 정림건축의 하루는 어떻게 돌아가나. 출근부터 퇴근까지 일과가 궁금하다.

<기 본부장> 오전 10시부터 2시까지가 필수 근무 시간이다. 일주일에 40시간만 근무하면 나머지 시간에 대해서는 개인이 업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설계 사무소는 본래 업무가 과중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부분을 많이 개선했다.

<안 본부장> 이노베이션 본부는 ‘스마트 워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업무 형태를 실험하고 있고, 평가 후 다른 설계 본부에도 전파되게 할 계획이다. 월요일에는 전체 직원이 모여서 한 주간 할 일을 공유하는 회의를 위해 본사로 출근한다. 화~금요일은 팀별로 자율적으로 하루에서 이틀 정도 본사로 출근할 날과 출퇴근 시간을 정한다. 이외의 시간은 개인들이 가장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장소에서 근무한다. 팀장들은 매일 아침 온라인 협업 툴을 통해 하루의 성과 목표와 업무 형태를 공유한다. 이노베이션 본부는 이런 모델을 실험하고 타 부서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연구 결과 보고서를 내고 있다.

Q. 독특한 복리후생이 있나.

<기 본부장> 정림청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한다. 직원들이 불편한 점이나 요구사항을 올리면 회사가 해결한다. 또, 해외 유명 설계사무소로 파견 근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일본과 유럽에 있는 설계사무소로 직원을 선발해서 파견하고, 실무를 하고 돌아올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안 본부장> 동아리를 지원한다. 배우고 싶은 분야에 대한 스터디를 신청하면 학원비나 경비를 지원한다. LEED AP 자격증을 획득하려고 직접 동아리를 만들었고, 동아리원 모두가 한 번에 합격한 바 있다. 초⋅중⋅고, 대학생 자녀가 있으면 회사에서 학자금을 지원한다. 헬스케어 센터를 부속 시설로 갖추고 있다. 센터에서 전문 트레이너의 트레이닝이나 테라피케어를 전 직원이 받을 수 있다. 시청 앞에 다목적홀을 갖추고 있어 건축 세미나를 열고 직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Q. 정림건축은 ESG를 어떻게 보고 있나.

<기 본부장> 건축은 설계부터 완공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는 산업이다. ESG가 도입되는 속도도 마찬가지이다. 시작 단계라고 봐야 한다. 아직은 정량적인 수치로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정림건축이 바라보는 ESG는 건강한 공간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정림건축은 친환경 건축을 추구하며 다양한 환경 실적을 내고 있다. 현대의 대규모 건축물은 콘크리트, 철, 유리 없이는 지을 수 없다. 대체 소재로는 탄소배출 계수가 낮은 합성목재를 고민하고 있다. 이 소재는 디자인이 낯설고 어렵기에 잘 손대지 않았지만, 정림건축은 올해 몇 개의 프로젝트에서 이를 활용한 설계를 진행했다.

<안 본부장> 친환경팀에서 ESG 관련해 기업들, 예를 들어 LG화학 연구소, SK 계열사 등에 컨설팅 용역을 진행했다. LG화학의 대전연구소에는 일반 건물 탄소배출량보다 25%를 절감할 수 있는 계획안을 작성해 전달하기도 했다.

Q. 지속가능한 건축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나.

<기 본부장> 건축 설계는 오래된 산업이다. 피라미드를 지을 때도 건축 설계가 있었다. 또, 가장 낙후된 산업이기도 하다. 인력을 기반으로 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이 지속가능성을 따라 변화하는 추세를 건축 산업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건축설계를 자동화하는 작업을 완료하는 게 1차 목표라고 생각한다.

<안 본부장> 동감한다. 모든 산업이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수행한다. 건축 산업은 아직 설계도를 출력해 도면을 만드는 등 기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 이 산업에서 깊이 적용되면 모든 업무가 클라우드에서 실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환경 보호와 에너지 사용량 절감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림건축은 이를 위해 2030 친환경 로드맵을 구축하고, 컴퓨테이셔널 디자인 기술의 확산을 준비하고 있다. 컴퓨테이셔널 디자인은 데이터와 에너지 성능 분석을 디자인 프로세스에 반영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는 일이다. 앞으로의 건축은 친환경 요소가 디자인의 논리적 근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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