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몬트주가 2026년부터 시행 예정인 무공해 차량(ZEV)을 의무판매하는 규정을 1년 반 유예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버몬트는 뉴욕, 메릴랜드, 매사추세츠 등 10여 개 주와 함께, 친환경차 의무판매 비율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의 무공해 차량(ZEV) 규제를 채택했다. 해당 규정은 캘리포니아 탄소 배출 기준에 따라, 2026년형 차량부터 전체 경량 차량의 35% 이상을 전기차 등 무공해 모델로 판매하도록 하고, 2035년까지는 가솔린 전용차 판매를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필 스콧(Phil Scott) 버몬트 주지사는 무공해 차량 규정을 일시 중단한다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 04-25)에 서명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콧 주지사는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부족하고, 중대형 차량 부문에서는 기술적 진전이 미흡하다”며 “현실적으로 달성 가능한 속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버몬트주의 이번 결정은 연방 차원에서 전기차 및 청정에너지 세액공제 축소 법안이 통과된 지 하루 만에 나왔다. 이에 따라 무공해 차량(ZEV) 규제를 채택한 다른 주들 역시 유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버몬트는 지난 2022년 12월,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CARB)가 설정한 연방 청정대기법(Clean Air Act) 제177조에 따라 ‘청정차량 2단계 규정(ACC II)’과 ‘청정트럭 규정(ACT)’를 채택했다.
하지만 스콧 주지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후변화 대응 의지는 확고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의무보다는 유연한 정책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기차 전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충전소 부족, 기술 미비, 연방 관세·정책 혼선 등이 가격과 공급망에 부담을 주고 있다”며 전기차 규제로 인해 일부 제조사가 내연기관차 공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 정부 전기차·청정에너지 세제 감축 영향 커… '선제 철회' 선택?
버몬트는 미국 내에서도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이 높은 주로 꼽힌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을 폐차하고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최대 1만1000달러(약 1560만원)까지 지원하는 ‘차량 교체 보조금(Replace Your Ride)’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번 정책 유예 결정은 기후 대응 후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환경단체와 지역 일각에서는 “전기차는 비용이 많이 들고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기후 위기라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미 연방정부가 환경 규제를 철회하고, 전기차 세액공제와 청정에너지 인센티브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미 하원은 캘리포니아의 2035년 내연기관차 금지 계획과 중대형 전기트럭 의무판매 규정에 대한 연방 환경청(EPA) 승인을 무효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에서의 논의 일정은 아직 불투명하지만, 캘리포니아주는 의회 조치가 위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기차 전문매체 일렉트라이브(Electrive)는 “공화당이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세금 혜택을 폐지하려는 가운데, 버몬트 같은 주들이 강제 폐지에 앞서 ‘선제 철회’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청정기술 전문 매체 클린테크니카는 “이번 버몬트주의 결정은 향후 무공해 차량(ZEV) 정책을 도입했거나 계획 중인 다른 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으며, “특히, 충전 인프라 구축과 상용차 기술 개발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한, 정책 유예와 ZEV 보급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움직임은 미국 전역에 확산될 가능성이 더욱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메릴랜드 주의 웨스 무어(Wes Moore) 주지사도 지난달 유사한 이유로 무공해 차량 규정의 시행 시점을 2028년형 차량부터로 연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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