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탄소 시장 인증기관 베라(Verra)의 인증 보류로 인해 좌초자산으로 전락한  트라피구라의 카르다몸 산맥 산림 프로젝트 탄소배출권/ Wildlife Alliance
자발적 탄소 시장 인증기관 베라(Verra)의 인증 보류로 인해 좌초자산으로 전락한  트라피구라의 카르다몸 산맥 산림 프로젝트 탄소배출권/ Wildlife Alliance

지난 22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원자재 트레이딩 업체 트라피구라(Trafigura)는 자사가 판매하는 산림 프로젝트의 탄소배출권에 대한 조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위탁판매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당 배출권은 기업 클라이언트와의 계약에서 제외되고,  장부에 '좌초자산'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트라피구라에 따르면, 일부 탄소상쇄 프로젝트로부터 취득한 탄소배출권은 상품으로서의 판매 가치를 완전히 상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ERU배출권 좌초자산 리스크 가장 커... 글로벌 트레이딩 업체 '손절'

탄소배출권의 종류/ 배출권시장 정보 플랫폼

현재 좌초자산의 리스크 가장 높은 것은 ERU(Emission Reduction Unit)배출권이다. 탄소배출권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ERU배출권은 유엔 교토의정서에 따라 공동이행체제(Joint Implementation)를 통해 발행된 배출권을 의미한다. 온실가스감축 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에서 발행되는 청정개발체제(CDM)와 달리, 공동이행체제는 감축의무가 있는 선진국 간의 탄소상쇄사업을 통해 배출권 발행이 이루어진다. 

문제는 선진국의 많은 기업이 탄소상쇄를 위해 해당 탄소배출권을 무분별하게 발행하면서, ERU배출권의 상당량이 시장의 신뢰를 잃고 좌초자산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2015년, 스톡홀름 환경 연구소와 외코 인스티튜트(Öko-Institut)가 공동 연구를 통해 ERU배출권 발행 프로젝트 60개를 분석한 결과, 이 중 73%는 탄소상쇄에 대한 효과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보고서는 ERU배출권 제도로 인해 약 6억 톤의 탄소배출이 추가적로 발생할 것이라고 추산했다.

때문에 시장에서도, ERU 배출권을 배척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탄소배출권 국제거래로그(International Trade Log, ITL)에 따르면 현재까지 약 8억 2500만 개의 ERU배출권이 발행되었는데, 세계최대 원자재 트레이딩 업체 비톨(Vitol SA)이 이 중 9%(7520만 개)를 구매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난 7월 미국 운송저널(American Transportation Journal)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자사는 ERU의 재무적가치가 없다고 보고 있으며 수년 전 이미 장부에 해당 배출권의 가치를 '제로'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또한 SMS홀딩(SMS Holding BV)은 ERU배출권의 환경적 신뢰도가 낮다고 판단해, 자사가 보유한 배출권 150만 개를 자발적으로 소각하기도 했다.

 

“탄소배출권의 신뢰도 문제 지적에도...

저품질 탄소크레딧 발행 계속되고 있어”

세계 최대 자발적 탄소배출 인증기관, 베라의 탄소배출권 90% 가량이 탄소배출감축효과가 없다고 고발한 기사/The Guardian
세계 최대 자발적 탄소배출 인증기관, 베라의 탄소배출권 90% 가량이 탄소배출감축효과가 없다고 고발한 기사/The Guardian

문제는 많은 트레이딩 업체, 인증단체, 연구기관들이 탄소배출 신뢰도 이슈를 지적하고 있음에도 저품질의 탄소배출권이 무분별하게 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지난 1월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와 비영리 탐사 저널리즘 기관인 소스 머티리얼(Source Material)은 보고서를 발간해 자발적 탄소 시장 내 인증의 4분의 3을 담당하는 베라의 탄소배출권 중 94%가 실제 탄소배출감축효과가 없는 ‘팬텀 크레딧’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베라의 탄소 크레딧 94%는 '팬텀 크레딧'... 탄소 감축 성과 없어

 이에 탄소시장 인증기관 베라(Verra)와 골드 스탠다드(Gold Standard)는 탄소배출권에 대한 인증 기준을 강화하며 자발적 탄소배출권시장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실제 지난 6월, 베라는 트라피구라가 캄보디아 산림 프로젝트를 통해 구매한 탄소배출권의 발행을 보류하고, 신뢰도 검증을 위해 심층 조사를 수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부 배출권판매업체와 정부기관은 여전히 저품질의 탄소배출권을 발행하고 있다.  일례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자발적 탄소배출감축 프로그램, 글로벌 탄소 위원회(Global Carbon Council)는 개발도상국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탄소배출권을 발행하고 이를 구매하고 있다.  반면 베라와 골드 스탠다드는 배출감축 이중계산문제와 탄소상쇄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2019년부터 전력망에 연결된 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탄소배출권 발행을 중단한 바 있다.

또한 벨라루스의 트레이딩 업체들은 지난해 설립된 벨라루스-아프리카 국외무역협회(Belarus-African Foreign Trade Association)를 통해 약 200만 개의 러시아산 ERU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2008년에서 2012년 사이 수행된 시베리아 산맥 산림 프로젝트를 통해 탄소배출권을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차후 최대 1억 개의 배출권을 판매할 계획이다. 하지만 해당 협회는 배출권의 신뢰도 인증을 위한 체계를 마련하지 않아 우려를 사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탄소배출권 구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글로벌 로펌 모건 루이스(Morgan Lewis)의 파트너 레비 맥칼리스터(McAlister)는 “탄소배출권에 대한 명확한 기준 혹은 규제가 없기 때문에 시장에 리스크가 늘 존재하는 상황”이라며 “특히, 탄소배출권의 정확한 가치 평가가 불가능하며, 이에 시장 가치가 순식간에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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