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환경보호청(EPA)이 10일(현지시간) 17억달러(약 2조4800억원) 규모의 환경정의 및 다양성·평등·포용(DEI) 보조금을 취소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월 취임 직후 모든 연방 기금 지급을 일괄 동결, 195억달러(약 28조4200억원) 상당의 기후 스마트 농업 등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보조금 지급도 중단한 바 있다. 로이터는 11일(현지시각) 이로 인해 미국 전역의 농부들이 심각한 경제적 불확실성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EPA, 환경정의 기금 17억 달러 취소… 역대 최대 규모 예산 삭감
EPA 국장 리 젤딘은 9개 보조금 프로그램에 걸친 400개 이상의 DEI 및 환경정의 보조금 취소를 발표했다. 젤딘은 X(구 트위터)에 "EPA의 총 절감액이 20억달러(약 2조9000억원)를 넘어섰으며, 이번 4차 EPA/정부효율부서(DOGE) 삭감이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라고 밝혔다.
취소된 프로그램 중에는 위치타 주립대학교의 하트랜드 환경정의 센터(Heartland Environmental Justice Center)에 지원되던 1000만달러(약 145억원) 규모의 5년 지원금도 포함됐다. 2023년 바이든 전 대통령의 환경정의 강조 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이 센터는 중서부 지역의 저소득층 및 소수 민족 커뮤니티가 연방 보조금을 활용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했으나, 현재 모든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하트랜드 환경정의 센터는 최근 인력 개발 동맹(Workforce Alliance of South Central Kansas)이 오염된 부지를 정화하는 노동자를 위한 무료 직업 훈련을 제공하는 약 50만달러(약 7억원)의 보조금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 바 있다. 또한 지역 활동가들이 환경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방 보조금 신청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USDA 농업 지원 중단… 소규모 농가 도산 위기 심화
농업 부문에 대한 자금 동결 역시 전국의 농가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로이터가 7개 주에서 25개 이상의 농가 및 농업 지원 단체와 인터뷰한 결과, 농무부(USDA)의 농업 지원금 동결로 인해 미국 전역의 농부들이 인력 감축, 투자 중단, 주요 자금 지원 실패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칸소주의 4대째 쌀 농사를 짓는 애덤 채플은 보전 농업 관행을 위해 자비로 지출한 2만5000달러(약 3600만원)의 환급을 기다리고 있다. 자금 상황이 불확실해 다음 작물 준비를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버지니아의 지속 가능한 농업 네트워크(Virginia Association for Biological Farming) 또한 USDA 프로그램에서 받던 자금이 대부분 동결되거나 취소되면서 운영을 중단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양봉업체는 허리케인 헬린으로 파괴된 60개의 벌통을 재건하기 위한 1만4500달러(약 2100만원)의 긴급 자금을 아직 받지 못했다.
몬태나주의 유기농 농부 네이트 파월-팜은 65만달러(약 9억원) 규모의 USDA 보조금이 동결되면서 사료 공장 건설 계획이 중단됐다고 밝혔다. 현재 약 500톤의 알팔파 곤포(梱包, 건초나 사료를 단단히 압축해 놓은 덩어리)가 들판에 방치되어 있고, 콜로라도 장비 제조업체에 대한 청구서 지불도 연체된 상태다.
USDA는 최근 동결된 자금 중 일부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미국 지속가능 농업 연합의 마이크 라벤더는 "첫 번째로 해제된 2000만달러(약 290억원)는 농부들에게 약속된 총액의 1% 미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약 3만 개 이상의 보전 계약(Conservation Contracts)을 통해 지급하기로 한 23억 달러(약 3조3520억 원)의 자금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다. 보전 계약이란 USDA가 농민, 목장주, 임업인 등과 체결하는 계약으로, 토양 보호, 수질 개선, 탄소 저감 등 환경보전 조치를 시행하는 대가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부 자금 해제 발표했지만, 명확한 정보 없어
USDA 장관 브룩 롤린스는 3월 2일(현지시각) 일부 자금을 해제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얼마나 많은 자금이 해제될지, 언제 해제될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여성, 성소수자(퀴어), 유색인종 농부들은 자신들이 체결한 농업 보조금 계약이 다양성·형평성·포용(DEI) 관련 프로그램으로 분류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DEI 예산 삭감 기조로 인해 지원금을 받을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자금 동결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다. 트럼프는 6일(현지시각) 오는 4월 2일까지 포타쉬 비료와 같은 농산물을 관세에서 면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관세가 발효될 경우 1910억달러(약 278조원) 규모의 미국 농산물 수출 부문에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로 2023년 농업 가구의 중간 소득은 손실 900달러(약 131만원)를 기록했다. 이는 절반 이상의 농가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적자를 봤음을 의미한다. 같은 해 자연재해로 인한 농업 손실 또한 거의 220억달러(약 32조628억원)에 달했다.
로이터는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소규모 농가의 파산과 농지 소유권 상실, 영세 농가 도태에 따른 대형 농업 기업의 독과점이 심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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