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탄소제거 인증체계(CRCF)가 국제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기후목표 달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독일 환경연구기관 오에코연구소(Oeko-Institut)는 29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가 제안한 CRCF 개정 초안은 지금까지 검토한 수백 개 방법론 중 가장 낮은 수준”이라며, “과잉 크레딧 문제로 논란이 된 베라(Verra)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밝혔다.
또한 “현 형태로는 실제 배출감축이나 제거를 입증할 수 있는 기반이 부족하고, 이대로 도입될 경우 EU 기후정책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CRCF의 인증 방식이 과거 베라(Verra) 인증을 기반으로 한 산림보전형(avoided deforestation) 프로젝트와 유사하며, 이는 실제 감축 효과를 입증할 수 없는 구조라고 평가했다. 당시 베라 방식은 산림 파괴 기준선을 과도하게 설정해 크레딧 남발 및 시장 가격 붕괴를 초래했다.
이번 CRCF 개정안의 핵심 문제로 ▲추가성 검증 미비 ▲기존 활동에 대한 소급 크레딧 발급 ▲과도한 유연성이 허용된 CO2 제거량 산정 방식 ▲간접 토지이용변화(leakage) 반영 미흡 ▲감축 효과의 영구성(permanence) 미확보 등이 꼽혔다. CRCF는 자발적 탄소시장 무결성위원회(ICVCM) 및 탄소크레딧 품질지표(CCQI) 기준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를 주도한 람베르트 슈나이더 연구진은 “이러한 구조는 과잉 크레딧(over-crediting) 발행 가능성을 높인다”며 “구조적 한계가 보완되지 않으면, 해당 프레임워크는 무용지물”이라고 평가했다.
EU 집행위는 이에 대해 “인증 방식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논의를 거쳐 계속 개발 중”이라며, “합리적인 의견 균형을 반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국제 시장 신뢰성 저하로 EU 기후 목표 달성 타격 우려
EU는 2050 넷제로 목표를 위해 산림 조성, 습지 복원 등 자연기반 사업을 통해 탄소제거 크레딧을 확보하고, 이를 감축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해당 크레딧은 EU 탄소배출권거래제(ETS)의 개편과도 밀접하게 연계되며, EU는 2026년 ETS 개편을 앞두고, 기업들이 배출 상한 일부를 탄소제거 크레딧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이번 인증 기준이 신뢰성을 얻지 못할 경우, EU 기후정책의 신뢰성과 제도 정당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U는 최근 자체 평가에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55% 감축이라는 중간 목표에 “점차 근접 중”이라고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신뢰성 있는 제거 체계 없이 해당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보조금 중복·저효율 기술 등 감축 지속성 확보 미흡 문제 많아
오에코연구소는 CRCF가 과거에 이미 완료된 활동에 대해서도 크레딧을 발급하고 있으며, 이는 파리협정 제6.4조나 CDM의 사전 공적 의도 표명 기준과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활동에 대해 재정 분석 요건을 면제하고 있어, CRCF 자금이 없었다면 사업이 실행가능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목됐다. 연구진은 "공공 보조금이 이미 투입된 사업에 CRCF 크레딧을 추가할 경우, 실질적 추가 감축 없이 단순 중복 지원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CRCF가 바이오매스를 ‘제로 탄소’로 간주하고 바이오차 생산 기술에 대한 최소 요건이 없다는 점도 비판으로 제기됐다. 기존 연료를 단순히 전환하거나, 저효율 기술로 바이오차를 생산할 경우 오히려 탄소 배출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바이오차 생산과 관련한 기술 기준, 메탄 배출 통제, 화석연료 사용 제한 등이 전무해 실질적 기후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또한 정량화 과정에서 간접 토지이용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측정 요소 선택의 자율성 증가, 감축 지속성을 담보할 규정 부재 등도 과잉 크레딧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비영구적인 감축 활동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탄소 저장량이 무효화될 수 있으나, CRCF는 이에 대한 명확한 책임 규정이나 대체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시적 크레딧(temporary credit)에 대한 관리 기준조차 부재한 상황이다.
오에코연구소는 “이 같은 구조는 결국 EU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며, “EU가 기후목표를 달성하려면 인증 방법론을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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