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들이 구매한 크레딧, 감축 효과 없거나 미미
- CDM 방식, 감축 효과 검증에 한계
- 정부·산업계,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필요해"
정부와 산업계가 자발적 탄소시장(VCM)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들이 구매한 탄소 크레딧의 실효성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4일 비영리 환경단체 플랜 1.5는 '국내 기업의 자발적 탄소시장 활용 사례 분석' 보고서를 발표, 국내 주요 기업들이 구매한 탄소 크레딧이 실제 감축 효과가 거의 없거나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업들이 구매한 크레딧, 감축 효과 없거나 미미
플랜 1.5는 삼성전자 영국법인, 대한항공, 한화에너지, GS에너지 트레이딩 싱가포르 법인, SK증권 등이 구매한 크레딧을 구체적인 사례로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 영국법인이 구매한 브라질 REDD+ 프로젝트(Pacajai REDD+ Project)의 감축 효과는 사실상 '제로(0)'였으며, 한화에너지가 구매한 태국 및 말레이시아 재생에너지 크레딧과 SK증권이 구매한 캄보디아 REDD+ 크레딧도 감축 실적의 신뢰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크레딧의 추가성(Additionality) 문제와 연결된다. 탄소 크레딧이 인정되려면, 해당 감축 프로젝트가 오직 크레딧 판매 수익이 있어야만 실행될 수 있었던 사업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즉, 크레딧이 없어도 충분히 추진될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추가 감축 효과가 없기 때문에 크레딧도 발행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광 발전소가 크레딧 없이도 수익성이 충분해 자연스럽게 건설될 상황이라면, 그 프로젝트는 크레딧 발행이 불가능해야 한다. 결국 크레딧 판매 수익이 없으면 실행될 수 없는 탄소 포집·저장(CCS) 프로젝트나 개발도상국의 산림 보호(REDD+) 사업처럼 순수 감축 목적의 프로젝트만이 크레딧을 발행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탄소시장의 신뢰성으로 이어진다.
재생에너지 크레딧(REC)도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이 구매한 크레딧의 89.7%가 인도 태양광 프로젝트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인도가 이미 2014년 그리드패리티(Grid Parity)를 달성한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드패리티(Grid Parity)란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기존 화석연료 기반 전기요금과 동일하거나 더 저렴해지는 시점을 의미한다. 인도의 태양광 발전 단가는 MWh당 0.09달러(약 130원)로, 전기요금(0.31달러(약 450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즉, 크레딧이 없어도 자연적으로 태양광 발전이 확대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CDM 방식, 감축 효과 검증에 한계
보고서는 기업들이 구매한 크레딧 중 상당수가 UN이 관리하는 청정개발체제(CDM) 프로젝트의 방법론을 따르고 있지만, 이 방식 자체의 신뢰성도 낮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독일의 환경·에너지 전문 연구기관인 에코 인스티튜트(Öko Institut)가 유럽연합(EU)의 의뢰를 받아 CDM 프로젝트를 분석한 결과, 전체 프로젝트 중 85%가 추가성이 부족하거나 감축량이 과대 추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1977년 설립된 에코 인스티튜트는 독일 정부 및 EU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자문하는 연구기관으로, 지속가능성 평가 및 배출권 제도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보고서는 "UNFCCC가 관리하는 프로젝트 기반의 감축 메커니즘조차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CDM 방법론을 그대로 적용하는 자발적 탄소시장 역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린워싱을 부추길 수 있는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보다는 의무적 배출 규제 강화를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산업계는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 필요해"
반면, 정부와 산업계는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산업통상자원부는 2022년 6월 「민간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설계 연구용역」중간 발표를 통해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바 있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 오영주 장관은 2024년 10월 중소벤처 탄소중립 미래전략 설계를 위한 자문단 위촉식 및 원탁회의에서 "중소기업의 탄소중립은 도전적이지만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라며 "국제 기준에 맞는 감축사업 인증표준과 거래 기준을 마련해 민간 인증 기반 탄소시장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자발적 탄소시장이 탄소 규제가 엄격한 EU 국가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의 지원 대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리협정 제6.2조 이행 규칙이 확정되면서 민간 탄소시장 크레딧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도 마련된 상황이다.
실제로 삼성증권은 2024년 12월 'COP29 결과가 가져올 글로벌 탄소 시장의 변화' 보고서에서 UN의 관리·감독하에 탄소 크레딧이 발행되는 제6.4조 메커니즘과 달리, 제6.2조 방식은 국가의 자율성을 중시하며 투자 유치국(대부분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감축 실적을 이전할 수 있고, 승인된 크레딧은 국가 NDC 달성,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국제항공 탄소상쇄 및 감축 제도(CORSIA) 상쇄 등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단, 크레딧의 신뢰성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탄소 크레딧 관련 보험 산업이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크레딧 보험 시장이 보험료 기준으로 2030년 10억달러(약 1조 4450억원), 2050년에는 300억달러(약 43조3500억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소시장이 주목받으면서 대한상의는 '탄소감축 인증센터'를 설립하고 자체 방법론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감축 사업을 평가하고 크레딧을 발급하고 있다. 2024년 5월 기준으로 총 22개 방법론이 인증되었으며, 약 120만톤의 크레딧이 발행됐다.
이에 플랜 1.5는 "대한상의의 검증 및 인증 절차는 신뢰성에 이미 문제가 제기된 CDM, 베라(Verra) 등과 거의 동일하다"며, "대한상의가 발행한 크레딧이 신뢰성과 추가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시민사회 및 전문가 차원의 면밀한 검증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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