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관련 기사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관이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등급이다. IMF 이후 탄생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비영리사단법인으로 2002년 설립됐다. 한국 기업들에게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제시하고 지속가능 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2003년부터 기업지배구조 평가를 실시해 왔다. 지금의 ESG 평가는 2011년 사회책임과 환경경영을 포함하면서 틀을 갖추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ESG를 평가하는 기관은 600여 개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특별한 함의를 갖는 까닭은 공공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평가기관은 평가와 컨설팅을 겸하고 있어 이해상충의 문제가 불거지지만, 비영리 사단법인인 기업지배구조원은 이런 논란에서 자유로운 몇 안 되는 기관 중 하나다.

김진성 책임연구원
김진성 책임연구원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팀 김진성 책임연구원은 2005년 기업지배구조원 설립 초창기에 합류해 지금껏 ESG평가를 맡고 있다. 초창기 모델부터 지금의 모범규준 개정까지 담당한 김 연구원은 “ESG는 10년, 20년 장기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며 ESG를 공공재로 칭했다.

Q. 국내에서 ESG 기사가 나오면 꼭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평가결과를 첨부한다. ESG가 화두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ESG 평가라고 생각된다. 평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2003년부터는 지배구조, 2011년부터 환경, 사회 평가를 했지만 처음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2년 전부터 ESG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더니 블랙록, 국민연금, 정부의 2050년 탄소 중립이 맞물리면서 ESG 평가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증가했다고 본다. 전방위적인 관심이 증가하면서 ESG에 대한 언급도 늘어나고, 그러면서 덩달아 기업지배구조원에 대한 언급도 늘어났다고 본다. 평가를 받고 있던 기관들도 “ESG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는 문의가 오고, 평가 대상이 아닌 기업도 평가를 해달라고 연락하기도 했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ESG 가치에 대한 부분이 먼저 언급이 되면서 정확한 판단이나 측정기준을 정하는 과정에서 평가가 논의됐다면, 상대적으로 ESG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기 전에 도입을 강조하다 보니 평가에 대한 논의부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쉽고 눈에 보이는 명확한 결과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개념부터 차근차근 논의되면 좋았겠지만, ESG 평가도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ESG 평가라 하면 어떻게 하면 등급을, 점수를 올릴 수 있는지 답을 달라는 문의도 많이 받지만, 결국 높은 수준으로 내재화를 하기 위해선 전체 시스템과 제도, 마침내 관행까지 바꿔야 하는 수준 높은 과제가 국내기업 앞에 놓여있다. ESG 평가로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충실하게 기업들이 따라온다면 그 자체도 하나의 개선이 될 수 있다.

평가가 판단의 주요 척도로서 작용할 순 있지만 ESG의 전부는 아니다. 그럼에도 예전엔 기업이 숨기고 있던 정보를 하나 둘 시장에 공개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저희가 태초에 해소하고자 한 코리아 디스카운트(Discount) 같은 부분도 많이 개선됐다. 2018년 엘리엇이 현대차에 거버넌스 주주제안을 했던 걸 기업 사냥꾼의 공격이다, 이렇게만 봤다면 이제 이런 인식은 줄어들었다. 주주제안에 대해서도 한국 기업이 어느 정도 받아들이기 시작했지 않냐. ESG를 10년, 20년 장기과제로 보면 결국 국내 인식도 바뀌어나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Q. 글로벌 평가기관들은 한국 특색을 잘 파악하지 못한다는 평도 이어진다.

해외는 같은 기준을 놓고 삼성과 애플을 비교하는 거라면, 기업지배구조원은 국내기업들만 놓고 비교한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외 기업에는 강제노동이 중요할지 몰라도, 한국 기업엔 제대로 된 노조, 산재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기업지배구조원이 나아가야 할 목표인 모범규준을 개정했다. 우리의 이전 인식으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법으로 통과되는 건 다소 어려운 일이었지만, 2020년엔 규제로 가할 정도로 의식이 성장했다. 이번 모범규준에 포함한 좌초자산이나 내부탄소세도 지금으로서는 선진적이라 평할지 몰라도, 결국 해외에서는 기본값이 된 개념들이라 봤다. 결국 국내에서도 기준값이 될 것들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ESG는 변화하지 않을 수 있어도, ESG내엔 다양한 이슈가 많기 때문에 이를 구성하는 것들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평가 요소는 지역화를 반영했을지 몰라도, 평가의 기본틀은 해외 자료를 참고했다. TCFD나 SASB, CDP 등 모범규준에 전폭적으로 반영했다. 특히 SASB는 산업분류나 재무적 가치가 있는 ESG 이슈를 규정해 더 열심히 보고 있다.

몇몇 해외기관에서도 우리를 찾아온다. 최근에는 기본 보고서도 영문화했고, MSCI 등에서도 한국 기업의 커버리지를 좀 더 늘리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다. 다만 ESG라는 공기(公器)를 다룬다는 부분에서 누구에게 데이터를 제공해줄 것인지는 조심스럽게 고려하고 있다.

 

Q. 국내에서 ESG 평가를 하는 대신경제연구소나 서스틴베스트와 달리 점수 공개를 하고 있다. S등급은 없지만 상위권 기업들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힌 바도 있는데, 국내 기업들의 수준은 어떠한가?

일단 평가 등급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공개를 하자는 입장이다. 등급 공개로 분명히 자극을 받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오뚜기의 경우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잘 부합하는 모델’이라며 대통령의 극찬을 받은 후 내부거래·탈세 등으로 국세청의 조사까지 받은 바 있다. 저희 평가 결과 상으로도 좋지 못했다. 기업에게 당장 리스크로 작용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문제 된 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오히려 개선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는 기본적으로 일반 투자자의 관점에서 진행된다. 일반 투자자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즉 투명한 정보공개와 접근성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평가를 거치며 더 많은 정보를 시장에 내놓게 됐지만, 좀 더 투명하게 공개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평가를 하며 느낀 점은, 확실히 ESG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편차가 심하다는 거다. 대기업 내에서도, 대기업과 중견기업 내에서도 인식차가 있다. 대기업의 경우 자원도 있고, 의지도 있기 때문에 나름 방법을 잘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좀 더 방점을 찍고 있는 건 중견, 중소기업이다. 이들의 경우 대기업처럼 해서는 어렵다. 대기업에게 강조를 하고 싶은 건, 지주-계열사-협력사-하청업체로 이어지는 공급망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협력사 ESG를 평가해서 계약에 반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더 중요한 건 교육이나 프로그램을 지원해 인식 개선에 앞장서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결국 이런 공급망이 함께 살아남아야 공생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 대응 시간을 늦추는 건 결국 기업들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갈거다. EU의 정보공개 의무화, 바이든 당선으로 기후의 중요성이 전 세계에 강조되고 있는 시점에서 늦은 대비는 더 큰 비용만을 지불하게 한다.

앞으로 코스닥과 비상장사까지 평가대상을 확대해가면서 인식 차도 줄이고, 여력이 된다면 가이드라인도 발간해볼 참이다. 지금도 기업에게는 평가과정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를 해드리고 있다.

 

Q. 실무자에게 줄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일관성 있게 운영하길 부탁드리고 싶다. 정보공개도 편의에 따라 바꾸기도 한다. 더불어 부정적인 이슈와 분쟁, 대응 방안을 꾸준히 제시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보고서는 그저 홍보용으로 전락할 뿐이다.

ESG 평가에는 리스크 관리 관점도 담겨있다. 지금까지는 ESG 위원회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내렸다면, 앞으로 내재화 측면에 초점을 맞출거다. 개별 기업의 목적에 맞는 ESG 조직 등을 구성, 운영하고 있는지 좀 더 촘촘하게 뜯어볼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서도 1.5도 상승을 가정했을 때 리스크를 식별했는지, 이에 대한 시나리오를 준비하는 등 대응을 할 수 있는지도 평가에 구현할 예정이다. 거버넌스도 내부통제가 안됐을 때 피해를 전사적인 관점에서 환경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넓혀가는 인식이 필요하다.

평가에 막혔을 때 우리한테 직접 전화를 해도 좋다. 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 목적은 기업이 개선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다. 기업이 평가에라도 대응하면서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남의 도움을 받으면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Q. 국내에 ESG가 안착하기 위해 중요한 플레이어는?

ESG는 공공재다. 이를 위해 정부, 기업 등이 공감대를 이루고 각자 역할을 해야만 온전히 안착될 것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관점에서 ESG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리 기업에게 ESG는 어떤 의미인지, 어떤 활동을 해야하는지 각자의 정의를 내리는 게 필요하다.

정부는 콘텐츠 자체를 너무 자세하게 규정하려 하지 말고 큰 틀에서 정보공개를 꾸준히 권장하며 종류를 확대해가는 식으로 하면 좋겠다. 해외의 경우 지표의 표준화 대신 정보 공개를 의무화한다. EU가 택소노미를 기반으로 기업에게는 NFRD를, 자산운용사 등 투자자에게는 SFRD를 요구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작업들이야 말로 기업의 미래를 준비 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공개에 대한 요구를 촘촘하게 하다보면, 결국 그 규정이 기업 정보공개의 기본이 되지 않겠느냐. 너무 꼼꼼하게 항목을 정해서 공시하라고 하지 말고, 속도감 있게 방향성을 제시해주는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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