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제로 원유’가 세계 최초로 도입된다는 내용이 23일 국내외 언론에 보도됐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이하 SKTI)이 미국 옥시덴탈로부터 2025년부터 5년간 매년 20만배럴 규모의 ‘넷제로 원유’를 도입하는 계약을 세계 최초로 체결했다는 내용이다. 블룸버그에도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20만 배럴은 항공유 기준으로 서울에서 제주도를 왕복 9000회 비행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이를 통해 2025년부터 스코프3(공급망 전체의 탄소배출량) 기준 연간 10만톤의 탄소배출을 줄일 계획이라고 한다. 

 

 

넷제로 원유? 탄소중립 원유? 

여기서 사람들은 궁금증을 제기한다. 분명 SK E&S가 “탄소중립 원유를 도입하겠다”고 했는데, 탄소중립 원유는 뭐고 넷제로 원유는 뭘까? 

우선 넷제로 원유에 대해, SKTI는 “채굴부터 정제, 연소까지 원유의 전(全) 생애주기 동안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과 동일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에 직접 포집해 유정에 주입, 영구 저장하는 방법으로 생산된다”고 밝혔다. 기존에 사용해온 ‘탄소중립 원유’와는 다르다고도 했다. 외부에서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는 탄소 상쇄(carbon-offset) 방식이 아니라 정유사의 가치사슬(value chain) 내에서 자체적으로 탄소중립을 구현하기 때문에 훨씬 더 엄격하며, 이는 결국 스코프 3(Scope 3)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넷제로(Net-zero)와 탄소중립(Carbon Neutral)은 비슷하게 쓰이지만, 넷제로는 온실가스를 배출한 만큼 흡수해 순(net)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으로 훨씬 더 엄격한 의미로 쓰인다. SKTI가 사오는 원유는 상쇄가 아니라, 가치사슬 내에서 탄소를 줄인 원유라는 의미다.

 

옥시덴탈 원유는 어떻게 넷제로 원유가 될까? 

옥시덴탈의 DAC 공장/SK이노베이션
옥시덴탈의 DAC 공장/SK이노베이션

 

미국의 메이저 정유사인 옥시덴탈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BP나 로얄더치셸 등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옥시덴탈은 일명 ‘DAC(Direct Air Capture, 직접공기포집)’ 방식으로 불리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하는 기술에 올인한다. 대기 중 탄소를 포집해 지하 깊숙히 펌핑해 수백만 년 동안 영구 격리시키는 방식이다. 미국 최대의 유전지인 텍사스주 퍼미안 분지에 대규모 DAC 설비에서 2024년 하반기부터 연간 100만톤의 탄소를 포집한다는 계획이다. 

옥시덴탈이 이 기술에 올인하는 것은 정유사들이 가진 ‘원유회수율증진(EOR)’ 기술 때문이다. EOR 기술은 원래 지하유전 안에 있는 잔류 원유를 빼내기 위해 쓰는 방법으로, 이산화탄소를 유전에 압축해 주입한 다음 그 압력을 이용해 남은 원유를 땅 위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사용되는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지하에 매장된다. 

옥시덴탈은 이 기술에다 최근 공기중 직접 탄소포집기술로 상당한 투자를 받고 있는 스타트업인 ‘카본 엔지니어링(CE)’과 협업했다. 카본엔지니어링은 빌게이츠가 투자한 탄소포획 스타트업인데 옥시덴탈, 쉐브론 등도 여기에 투자해 DAC 기술을 라이센싱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는 이에 대해 “원유 공장의 경우 따로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수송할 필요가 없이 바로 포집된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회수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옥시덴탈의 비키 홀럽(Vicki Hollub) CEO는 지난해 1월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지하로 격리시킨 이산화탄소의 양이 테슬라가 대기를 탈탄소화시키는데 기여한 양을 초과했다”면서 “매년 2000만톤 가량의 탄소를 지하에 매장하는데, 이는 자동차 400만대가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시티그룹의 애널리스트들은 이 DAC사업이 옥시덴탈 사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며, 향후 10년 동안 이 회사의 주식 평가에서 상당부분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미 유나이티드 항공에서도 자신들의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 옥시덴탈과 협업하고 있다고 한다. 

비키 홀럽 CEO는 “우리는 ‘탄소 관리 회사’가 되려고 한다”며 “15~20년후에는 석유나 가스, 화학 수입을 합친 것보다 탄소 관리 수입이 더 많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옥시덴탈의 넷제로 원유, 이슈는 없나?

SKTI가 옥시덴탈의 원유를 어떤 거래조건으로 구입했는지는 알 수 없다. 넷제로 원유가 경쟁력이 있으려면, 단가가 저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이 RE 100(재생에너지로 전력 100%를 사용)을 하려고 해도,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해외에 비해 턱없이 높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탄소포획은 현재로선 단가가 매우 비싸다. 탄소는 대기의 0.04%에 불과하기 때문에 엄청난 양의 공기를 여과해야 대량으로 포획 가능하다고 한다. FT는 “대기 중 탄소 추출은 톤당 200달러가 넘는 반면, 나무심기 같은 다른 방법은 톤당 10달러밖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DAC 방식으로 CO2를 1톤 포획하는데 600달러가 들 수도 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과 에너지기업들은 현재의 초기 시장에 벤처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단적인 예가 스위스에 본사를 둔 클라임웍스다. 클라임웍스는 지난 2020년 6월 아이슬란드에 ‘오르카’라는 DAC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7500만달러(91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기도 했다.  클라임웍스는 이미 스위스리, BCG, MS 등으로부터 제거한 탄소에 대한 크레딧(credit)을 정기구독 형태로 판매까지 하고 있다. 

DAC를 옹호하는 이들은 “태양광과 풍력이 친환경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크레딧의 혜택을 받은 것처럼, 다른 온실가스 배출 저감기술도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옥시덴탈은 DAC 발전소가 많이 건설될수록 기술이 저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반대 목소리도 있다. 기후활동가들이 주장하는 목소리는 “결국 옥시덴탈이 원유 추출에서 탄소를 제거한다고 해도,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제품을 통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라는 것이다. 스코프3 배출량까지 포함할 경우 원유회사의 탄소포집 방식이 과연 비용 대비 효과적인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한다. 정유사들의 스코프3 배출량은 전체의 70~8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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