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지난 31일(현지시각) 유럽지속가능성 보고표준(ESRS)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집행위는 지난 6월에 ESRS의 개정 초안을 발표하고 2개월 간의 협의를 거쳐 이를 채택했다.
집행위가 이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유럽의회와 이사회가 2개월 간 이를 검토하게 된다. ESRS 개정안은 기업이 중대성을 평가하여 중요하지 않은 지수에 대해서는 공시를 생략하게 하여 논란이 일었는데, 이번 발표로 공시 규제를 완화하는 집행위에 대한 비판이 재점화됐다.
일괄 공시에서 단계적 공시로 완화...
기업 규모별 보고서 발간 시점 확인해야
EU 역내에서 사업을 실행하는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ESG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는 기업의 지속가능성공시 지침(이하 CSRD)에 따라 2024년부터 ESRS에 부합하는 공시를 실행해야 한다.
ESRS가 완화된 배경에는 공시 규제에 대한 부담이 과중하다는 산업계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확인된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집행위 위원장은 기업들이 환경 규제로 인해 전환 비용이 늘어나는 데 불만을 제기함에 따라 올해 EU집행위의 업무 전반에 걸쳐 관료주의를 줄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집행위는 유럽 재무보고자문그룹(EFRAG)이 제시한 ESRS 기준 초안을 수정하여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정보의 일부를 기업의 자발성에 맡김으로써 규제를 완화했다.
ESRS 초안은 2024년부터 모든 기업들이 지속가능공시 의무를 일괄적으로 이행하도록 했지만, 집행위는 기업의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직원 수가 750명 미만인 기업은 생물다양성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이슈 중 공시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1년 또는 2년의 유예기간을 부여받는다. 집행위는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이 공시를 진행하는 비용에 대한 부담이 크므로 이를 고려하여 위와 같은 조건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공시는 CSRD의 이전 규정인 비재무보고지침(NFRD)의 적용을 받았던 직원 수가 500명 이상인 EU의 기업과 유럽연합 외의 상장 대기업은 2024년 회계연도의 정보를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 그 외 EU 비상장 대기업은 2026년에 ESRS 표준에 맞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유럽권과 비유럽권 구분 없이 상장사의 경우 2027년에 보고서를 내야 하며, 공시 기간을 최대 2년 유예하여 2029년에 보고서를 발행할 수 있다. EU에서 연간 1억 5000만 유로(약 2123억원) 이상의 매출을 창출하고, EU에 4000만 유로(약 567억원)를 초과하는 지사, 대기업 또는 상장 중소기업인 자회사가 있는 비EU 기업 역시 2029년에는 보고서를 내야 한다.
기업의 중대성 평가 통해 공시 표준의 차등 적용
집행위는 관련성이 적은 정보를 공개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에 공개 정보를 중대성(materiality)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성도 부여했다.
EFRAG도 초안에서 ESRS 표준을 적용할 때 중대성 평가를 통해 공시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것은 인정했으나 ESRS 2, ESRS E1, ESRS S1 등과 다른 공시 기준인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제(SFDR), 벤치마크법(BMR), 유럽자본규제법(CRR)과 연관된 공시 사항에 대해서는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집행위는 일반 공시 표준인 ESRS 2 외에는 기업이 자발적으로 중대성 평가에 따라 적용하도록 제안했다. 위원회는 생물다양성에 관련된 전환 계획이나 스코프 3의 탄소 배출량과 같이 공시하기 어려운 사항에 대한 공시 의무도 면제했다. 다만, 기업이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한 항목에 대해서는 왜 중요하지 않은지 근거를 들어 설명해야 한다.
ESRS는 ▲ESRS 1(일반 요건) ▲ESRS 2(일반 공시) ▲ESRS E1(기후) ▲ESRS E2(오염) ▲ESRS E3(수자원 및 해양 자원) ▲ESRS E4(생물다양성과 생태계) ▲ESRS E5(자원 사용과 순환경제) ▲ESRS S1(기업 자체의 노동력) ▲ESRS S2(가치사슬 내 근로자) ▲ESRS S3(기업활동에 영향 받는 지역사회) ▲ESRS S4(소비자와 최종 사용자) ▲ESRS G1(사업 수행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ESRS에 부여한 유연성으로 정보의 신뢰도 하락...
검증이 더 중요해질 것
ESG에 대한 공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단체인 유럽 지속가능투자포럼(Eurosif)은 집행위의 결정에 실망감을 표현했다.
알렉산드라 팔린스카 Eurosif 상무이사(Executive Director)는 성명에서 “주요 ESG지표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라는 투자자들의 요구가 집행위의 결정에 반영되지 않아 유감스럽다”며 “투자자들은 EU의 기후법과 그린딜 목표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지속가능성 공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기업의 공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urosif는 7월 초에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 기후변화에 관한 기관투자자그룹(IIGCC), 유럽자산운용협회(EFAMA), 유엔환경계획 금융 이니셔티브(UNEP FI)와 함께 공시에 관한 공동 성명을 냈다. 이 단체들은 성명을 통해 스코프 1, 2, 3의 배출량을 포함해 주요 기후 공개 지표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urosif는 성명을 통해 "집행위가 부여한 자율성으로 인해 ESRS의 성공은 이제 공시 기업과 이들의 자문과 컨설턴트, 감사, 검증업체에 달려 있으며 이중 중대성 원칙을 공시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중대성 평가를 수행해야 하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후 싱크탱크인 E3G의 수석 정책고문인 츠베텔리나 쿠즈마노바(Tsvetelina Kuzmanova)는 “집행위가 공시에 유연성을 부여함으로써 정보의 가용성과 비교 가능성을 잃게 될 것이며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속가능성 공시 프레임워크를 만들기에 큰 어려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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