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달 동안 국내 대기업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여성 사외이사 선임이었다.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 이사회에 여성을 한 명 이상 포함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 때문이었다. 한국거래소 손병두이사장은 지난 1월 성평등과 관련된 ‘우먼(Women)지수’를 개발하겠다고 밝히며, “미국 피터슨연구소가 상장기업 2만여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비중을 30%까지 높이면 회사 수익성이 1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올바름(Politics Correctness)’에 갇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기업 안팎에선 “여성 임원이 기업 성과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데 능력이나 전문성이 아닌 성별을 자격 요건으로 두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와 관련, 최근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하나 소개됐다. 기업에 여성임원이 등장한 이후 장기 전략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주는 연구결과였다. 코린 포스트(Corinne Post)는 리하이(Lehigh)대학 경영학 교수, 보리스 록신(Boris Lokshin) 마스트리히트(Maastricht)대 전략 및 기업가정신학과 부교수, 크리스토프 분(Christophe Boone) 앤트워프(Belgium)대학 경영경제학부 교수 등은 남녀 임원인사를 13년간 추적해 163개 다국적기업의 연구개발비, M&A 금리, 주주서한 등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 기업의 장기 전략 변화를 파악했다.
M&A보다 R&D에 더 관심 높아져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임원의 등장 이후 기업은 전략적 사고 전환에 세 가지 뚜렷한 동향을 드러냈다.
첫째, 이들 기업은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위험(리스크)을 덜 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스크를 줄이면서 변화와 혁신을 수용한다는 것이었다. 문서 분석 결과, C레벨에 여성임원이 생겨난 후 위험 감수성향을 나타내는 ‘대담한(bold)’ ‘벤처(venture)’ ‘기회(chance)’ 등의 회사 커뮤니케이션 용어 빈도는 14% 감소했다. 반면, 변화에 대한 개방성을 시사하는 ‘창조하다(creat)’ ‘바꾸다(transform)’ ‘출시하다(launch)’ 등의 용어는 10% 증가했다.
둘째, 이들 기업은 관심사를 M&A에서 R&D로 초점을 옮겼다. 연구진들은 “여성 간부가 생기게 되면, 지식구매(knowledge-buying) 전략인 M&A에서 지식습득(knowledge-building) 전략인 R&D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며 “M&A는 전통적으로 남성적인 접근인데 반해, R&A는 여성적이고, 협력적인 접근방식으로 여겨져 왔다”고 밝혔다.
기업 임원진에서 위험감수 성향의 표준편차가 증가했을 때, 다음 해에 추가 M&A를 할 가능성이 평균 10% 늘어났다. 반면, 여성이 고위직에 임명된 후 기업들은 평균 1.1%의 R&D 투자를 늘렸다. 연구 표본에 있는 기업들의 평균 총 R&D 투자액은 6538만 달러(730억원)였으므로, 1.1% 증가율은 상당한 규모였다.
셋째, 여성이 최고 경영진그룹에 잘 통합되었을 때 여성들은 기업 의사결정에 더 큰 영향력을 미쳤다. 특히 이사진에 10명의 남성이 존재할 때 2명의 여성임원이 등장하는 사례에 비해, 5명의 남성이 존재할 때 1명의 여성임원이 등장하는 사례일 경우 훨씬 더 큰 변화가 일어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들은 “10명 그룹에 2명의 여성임원이 등장하면, 현직 남성고위임원들은 더 큰 위협을 느끼며, 신규로 임명되는 여성에 대한 신뢰도와 환영도가 떨어지면서, 여성임원들의 기여도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록히드 마틴 매릴린 휴슨, AMD 리사 수, 유튜브 수잔 워치키 등 사례
연구진에 따르면, 여성들이 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리스크(위험) 회피 성향이 높은 이유는 이들의 임원직 진출 경로에서 추측 가능하다. 연구진들은 “고위직으로 진출하기 위해 여성들은 어려운 줄타기를 해야 하며, 이들은 종종 소심함에 대한 고정관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두각을 드러내는 걸 배운다”며 “동시에, 실수를 저지를 경우 조직 내 모든 시선이 집중될 것을 아는 여성들은 혁신의 이점과 리스크(위험) 완화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두는 성향을 갖게 된다”고 밝혔다.
연구진들은 최근 전 세계 기업의 중요한 화두가 된 ‘다양성(Diversity)’ 이슈와 관련, 여성임원의 등장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최고 경영진의 리스크(위험) 내성을 키우고, 변화에 대한 개방성을 촉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이 변화가 본질적으로 ‘더 나은’ 것인지에 관한 판단은 미뤘다”며 “인종과 소수민족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기업 임원에 등장할 경우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들은 이처럼 변화와 혁신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대표하는 여성 리더들로, 록히드 마틴의 매릴린 휴슨(Marillyn A.Hewson) 의장, 미 반도체기업 AMD의 리사 수(Lisa Su), 유튜브의 수잔 워치키(Susan Wojcicki) 등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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