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가 미국에서 정쟁의 한복판에 섰다. 가장 큰 폭격을 맞는 건 블랙록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ESG 전쟁’은 더 커질 조짐이다. 

10조달러(1경원)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의 공격을 받고 있다. 텍사스주 테드 크루즈((Ted Cruz) 공화당 상원의원이 24일(현지시각) CNBC에서 ESG 투자를 이끌어온 블랙록의 래리핑크 CEO를 맹비난한데 이어, 이번에는 유명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이 블랙록에 맡긴 자금을 뺄 수도 있다는 경고서한을 보냈다. 

 

유명 환경단체 시에라클럽, "1200만달러 블랙록 운용자금 뺄 수도" 

기후 대응 후퇴 블랙록에 불만 서한 보내

북미 최대규모의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홈페이지 캡처
북미 최대규모의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홈페이지 캡처

세계적으로 유명한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은 24일(현지시각) “올해 블랙록이 (연례 주주총회에서) 기후 중심의 주주결의안을 덜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 우리는 (블랙록에 맡겼던) 1200만달러(151억원)의 투자금을 거둬들일 수 있다”고 공식서한을 통해 경고했다. 

시에라클럽(Sierra Club)은 1892년에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북미 최대 규모의 환경단체로, 회원 및 정기후원자가 300만명에 달한다. 1860년대 미 서부의 광산개발 반대와 요세미티 계곡 및 시에라네바다 보존운동으로 시작돼, 옐로스톤과 요세미티의 국립공원 지정을 이끌어낸 단체이기도 하다. 블랙록의 기후대응을 촉구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2억2000만달러(2700억원)의 자산을 관리하는 시에라클럽재단(The Sierra Club Foundation)은 현재 블랙록의 관계사인 아페리오(Aperio)를 통해 자산운용을 맡기고 있다. 지난해 11월 블랙록이 지분을 인수한 아페리오 그룹은 부유층 개인 맞춤형 자산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회사다. 

로이터에 따르면, 시에라클럽 재단은 “자산운용사의 입장이 기후변화의 피해를 완화하고자 하는 우리의 목적과 상충된다고 여겨진다”며 블랙록의 래리핑크를 비롯한 임원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시에라클럽 재단의 댄 추(Dan Chu) 최고책임자와 몇몇 동료들은 서한을 통해 “우리는 블랙록과 아페리오가 시에라클럽 재단의 장기적인 재무 및 미션 중심의 이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시에라클럽 리더들은 “이러한 서한 발송도 기후변화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한 우리의 목적 중 일부”라며 “블랙록의 업무수행은 수탁자의 책임(fiduciary duties)과 거의 부합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블랙록의 대리투표 정책은 왜 후퇴했나

시에라클럽이 블랙록에 맡긴 투자자산을 뺄 것이라는 협박성 서한을 보낸 이유는 최근 블랙록이 밝힌 주요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책 관련 대리투표(proxy voting) 정책 때문이다. 

블랙록은 지난 5월초 투자스튜어드십 리포트를 통해 “올해 기후변화 대책에 관한 주주결의안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거나 규범적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2021년 블랙록은 환경 및 사회(E&S)의 주주결의안 47%(172개 중 81개)를 지지했다. 

하지만 올해 블랙록의 보고서는 지난해와 어조가 좀 달랐다. 블랙록은 ▲기존 에너지기업(화석연료 회사)에 대한 금융 제공을 중단하거나 ▲화석연료 기업의 자산을 폐기하도록 하거나 ▲은행 및 화석연료 기업 비즈니스 모델을 특정한 1.5도 시나리오에만 맞추도록 요구하거나 ▲기후 위험 보고 또는 투표를 의무화하기 위해 정관 또는 기업 헌장을 변경토록 하거나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절대적인 감축목표를 설정토록 하거나 ▲기후로비활동에 대한 정책 입장 또는 정치 지출을 하도록 하는 등의 주주결의안에 대해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고 봤다. 

블랙록은 “과도한 기후변화 대책은 우리 고객사들의 재정적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신 블랙록은 기업이 기후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지를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 개선 방안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스코프1, 스코프2 배출량 및 배출량 감축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양적 정보를 선호한다고 했다. 

이러한 발표가 나오자, 시에라클럽을 포함한 환경단체들은 “실망스럽다”는 어조로 논평했다. 2020년 블랙록 래리핑크 CEO의 서한에서 보이듯 “기후 리스크가 투자 리스크” “우리가 근본적인 금융 재편의 벼랑 끝에 있다고 믿는다”와 같이 금융기관의 기후 책임에 대한 강경한 어조에서 한발 물러섰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부적절한 ESG 압력" 맹비난

테드 크루즈 미 텍사스주 상원의원./ CNBC 캡처
테드 크루즈 미 텍사스주 상원의원./ CNBC 캡처

일각에서는 블랙록의 ‘변심’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ESG와 지속가능투자의 리더로 자리매김을 해온 블랙록이 기후변화 이슈가 점점 정치화되면서 오히려 부메랑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4일(현지시각)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공화당 상원의원의 CNBC 인터뷰였다. 그는 ‘광범위하고 부적절한 ESG 압력’에 대해 블랙록의 래리핑크 CEO를 맹비난했다고 CNBC는 밝혔다. 

그는 “이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시장을 남용하는 것(That is not capitalism, that is abusing the market)”이라고 주장했다. 

크루즈는 인터뷰 상당 부분을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기름값 폭등을 백악관의 정책 탓으로 돌렸다. 그는 또 래리 핑크에 대해 “주주들의 이익 증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벗어나 부유한 진보주의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적 문제에 입장을 취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밝혔다.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59달러(5700원)가 넘는 것과 관련,  “월가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크루즈 의원은 “래리 핑크 추가요금이 부과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래리 핑크로 인해 ESG가 전례없이 부상했다"고 말했다.

크루즈 의원은 ETF 펀드를 언급하며 ”래리 핑크는 자신의 돈을 주주로서 투표하는 데 쓰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래리 핑크가 하는 일은 당신의 주식과 내 주식, 그리고 펀드에 투자한 수백만 명의 할머니들의 주식들을 가져가는 일이며, 그는 이렇게 엄청난 양의 자본을 모았다”며 “고객에 대한 신탁의무는 최우선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수익을 극대화하기로 투표하지 않는 대신 자기 정치에 투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계좌의 수익률을 낮추고, 일자리를 파괴하고, 미국의 적들을 돕는 등 피해를 입혀도 석유와 가스에 맞섰기 때문에 더 환영받는다”며 “투자자들을 대신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주 결의안에 투표하는 자금관리자들에 대한 좀더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블랙록, "대리투표 선택권 더 넓히겠다" 

텍사스를 포함한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지난해부터 ‘안티 ESG’를 선봉에 내걸고, ‘반(反)ESG 연금법’을 내놓거나, 연기금이 ESG 때문에 석유 및 가스 기업과 관계를 끊지 못하도록 강력히 나서고 있다. 이뿐 아니라 공화당원들은 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내놓은 기업의 기후공시 의무화 규정에 대해 이를 철회하라고 게리 겐슬러 SEC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공화당 텃밭인 텍사스지역은 석유와 가스산업의 본거지로, 기후변화와 ESG투자가 늘어날수록 화석연료 산업의 위축으로 인한 세수 확보의 어려움, 일자리 상실 등으로 이어져 이러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한편, 블랙록 대변인은 이날 CNBC측에 이메일을 통해 “블랙록의 대리투표를 추진하는 유일한 의제는 우리가 관리하는 수백만 명의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뿐”이라며, “의뢰인들이 대리투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대리투표 선택권을 제공하는 데 업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 60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위한 연기금을 포함해 운용 중인 인덱스 주식자산의 절반 가까이가 대리투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며 “더 많은 고객의 투표 선택 폭을 넓히기 위해 대리투표 민주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 1월 연례서한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정치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힌 래리 핑크 CEO는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일까. 하지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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